하루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 만약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 최대 공신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될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1년 전인 2001년 공직을 떠났지만 대중적 인기는 여전해 지지도가 지금도 60% 대를 넘나든다. 그는 9월 민주당 전당대회 때 명연설로 오바마에게 이른바 컨벤션효과를 선물했다. 오바마가 선거전 막판 허리케인 샌디로 백악관에 발이 묶였을 때는 그를 대신해 핵심 경합주를 돌며 대리 유세를 했다. 오바마와 클린턴 두 사람은 이처럼 선거전 막바지까지도 공동 유세로 브로맨스(bromanceㆍ남자들의 진한 우정) 이상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빌 클린턴이 오바마의 비빌 병기가 된 것이 여전히 높은 인기 때문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그의 행보는 전직 대통령의 개입 치고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정답은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오바마가 지켜내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퇴임 후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줄곧 전해온 그의 행적을 보면 수긍이 되는 대답이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고 허전한 게 사실이다. 그 궁금증을 풀어줄 열쇠는 바로 공화당 상원의원 존 매케인의 최근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카더라 통신'을 인용하긴 했지만 빌 클린턴의 행보가 2016년 부인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을 위한 것이라는 게 매케인의 설명이다. 4년 뒤 힐러리 클린턴이 집권하려면 2012년 대선의 민주당 승리가 필요한데 기민한 빌 클린턴이 이를 알아채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지난 4년 동안 구조조정을 해온 미국 경제가 2016년이 되면 훨씬 건실해질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백악관 예산관리처(OMB)에 따르면 2016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4.0%로 올라가고 실업률은 6%대로 내려간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힘주어 얘기하는 1,200만개의 일자리 창출도 지금 추세만 유지되면 실현될 수 있다. 그러니 만약 롬니가 당선되면 재선은 떼놓은 당상이고 힐러리 클린턴의 대통령 꿈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빌 클린턴은 4년 뒤를 위한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 셈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 대선 출마 의사를 비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라는데 이견이 없고 또 그가 퇴임 외교관으로 마냥 남아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도 없다. 리비아 벵가지 영사관 테러 사건에서 그의 측근이 별도 해명을 하며 이미지 관리에 신경 쓰는 것이나 클린턴 사단이 흩어지지 않고 워싱턴 주변에 남아 움직이는 것 역시 범상치 않다.
힐러리 클린턴이 세계를 순방할 때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경쟁자였던 오바마와 어떻게 손발을 맞출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미국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답한다. 그렇게 4년을 인내해온 힐러리 클린턴은 소프트 파워 외교로 오바마의 최대 치적을 만들어내며 이번 선거의 외풍을 차단했다. 4년 전의 여성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한 것은 이 같은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가능했다.
한편으로 그는 연설 때마다 여성이 인권이라고 강조하며 세계 여성운동과 인권운동에 영감을 심어주는 글로벌 리더의 자리에 서 있다. 이전에도 그랬듯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그의 리더십은 수많은 '클린턴의 여성들'을 만들어냈다.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만들 준비를 하면서 자신뿐 아니라 세상의 여성들에게 스스로 주인이 되는 꿈을 갖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세상 절반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으려는 클린턴의여성들이 오바마에게 찬성표를 던질 유권자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다. 빌과 힐러리 클린턴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어떤 전직 대통령, 어떤 여성 지도자가 필요한지에 대한 작은 지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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