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초인 1999년 옷로비 사건 및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검부터 현재 진행중인 내곡동 사저 특검까지 지금까지 도입된 특검은 총 11번이다. 하지만 당시 여론의 평가만 놓고 보면 '잘 된 수사'라는 평가를 받은 특검은 2건에 불과하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당시 ㈜G&G구조조정 대표 이용호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조사한 차정일 특검은 김대중 대통령의 주변 인사들을 줄줄이 구속하며 "특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았다. 반면 "특검의 할아버지가 와도 나오는 게 없을 것"이라던 대검찰청은 크게 체면을 구겨야 했다.
2003년 대북송금 사건 특검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배후에 현대그룹이 대북 사업권 구매와 남북정상회담을 대가로 북한에 비밀 송금한 천문학적인 금액이 있다는 의혹이 수상 대상이었다. 당시 송두환 특검은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구속기소하고 현대그룹이 국가정보원 계좌를 통해 북한에 4억5,000만달러를 송금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등 특검의 '전성기'를 이어갔다.
반면 나머지는 대체로 국민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다. 1999년 동시 출범한 옷로비 사건 특검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검은 모두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 됐다. 당시 "특검으로 밝혀진 건 앙드레김의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사실 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제기된 측근 비리 의혹으로부터 출발한 2004년 측근 비리 의혹 특검은 새롭게 규명한 의혹이 거의 없어 '특검 무용론'도 제기됐지만, 근거 없는 의혹을 유포한 뒤 특검에게 떠맡기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관행도 비판을 받았다. 2005년 러시아 유전 개발사업 사건 특검과 2008년 이명박 대통령 BBK의혹 사건 특검,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특검, 지난 2월 디도스 사건 특검 등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특검이 오히려 실체적 진실 발견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 특검팀은 정관계 로비 의혹과 떡값 검사 의혹에 대해 모두 '혐의 없음' 결론을 내렸다. 또 이건희 회장의 수천억원대 배임 및 조세포탈을 확인하고도 "오랜 기간 내재된 기업의 불법행위를 엄격히 처단하기 어려운 데다, 증거 인멸 우려가 없고 경영 차질이 우려된다"며 불구속 기소해 특검이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특검을 지낸 조준웅 변호사는 최근 변변한 경력이 없던 아들이 2010년 삼성전자에 과장급으로 입사한 사실이 드러나 도덕성 논란도 제기됐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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