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지병으로 은둔해 온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의 딸 리너(李訥ㆍ72)가 돌연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장은 최근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회대표(18차 당 대회)를 앞두고 마오 사상을 당의 헌법인 당장(黨章)에서 삭제하는 문제가 논란이 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인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와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의 자녀들의 활약상도 언론에 나오고 있다. 공산당 내에서 극심한 노선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란 분석도 나온다.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은 2일 마오 전 주석과 네번째 부인 장칭(江靑) 사이에서 태어난 리너가 지난달 31일 장쑤(江蘇)성 옌청(鹽城)공학원 체육관에서 열린 우주선 선저우(神舟)7~9호 진품전(珍品展)에 남편 왕징칭(王景淸)과 함께 참석했다며 관련 사진을 내보냈다. 이날 행사는 마오 사상의 전승과 발전을 추구하는 중국홍색문화국제교류촉진회가 주최했다.
리너의 성이 마오가 아닌 것은 마오 전 주석이 국민당에게 쫓길 무렵 이름을 리더성(李得勝)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1940년 옌안(延安)에서 태어난 리너는 마오쩌둥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딸로, 이마와 얼굴 모양새가 마오 전 주석을 닮았다. 1960년 베이징(北京)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해방군보(解放軍報)사와 베이징시 등에서 일하다 1990년 은퇴한 뒤론 보통사람으로 살아왔다. 신부전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외부의 도움을 거절하며 외롭지만 겸손한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그의 등장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관영 신화통신은 당장 개정안 심의 사실을 전하면서 마오 사상을 언급하지 않은 채 "덩샤오핑(鄧小平) 이론과 3개 대표사상을 지도로 삼아 과학적 발전관을 실현해야 한다"고만 보도했다. 이에 따라 리더의 등장은 마오 사상을 옹호하기 위한 세력의 계산된 기획이란 시각도 없잖다.
이날 홍콩의 대공보(大公報)는 후야오방의 아들인 후더핑(胡德平)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후 위원은 "공산당은 인민과 민족이 신탁한 개혁 책임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후 위원은 9월에도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을 만나 과감한 개혁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경보(新京報)는 최근 중국 2위 경매업체인 자더(嘉德)의 창업자 중 한 명으로 변신한 자오쯔양의 딸 왕옌난(王雁南)을 소개했다. 당 대회를 앞두고 그 동안 접촉이 금지됐던 자오쯔양의 딸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실린 것은 정치적 함의가 크다는 분석이다.
마오의 문화대혁명 오류를 비난한 후야오방의 죽음은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촉발했고 자오쯔양도 톈안만 사건 당시 학생들 시위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실각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중국 정치개혁의 상징적 인물이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당 대회를 앞두고 원로들이 노익장을 과시하고 그들의 자녀들까지 세 과시에 이용되는 등 혼돈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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