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축구경기장 가지(Ghazi)는 아프간 축구팬들의 함성으로 들끓었다. 데메이완드아탈란과 시모르그알보르즈의 준결승전. 1대0으로 뒤지고 있는 데메이완드아탈란의 미드필더 아사둘라 레자이가 상대 선수를 제치고 골문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이었다. 18세인 레자이의 허벅지에는 폭탄 파편이 박혀서 생긴 흉터가 커다랗게 남아 있었다. 그가 찬 공은 골대를 빗나갔지만 관중은 목이 쉬어라 소리쳤다. "레자이!" 갈등의 땅, 아프간에서 프로축구 시대가 열렸다.
공개 처형장이 프로축구 메카로
아프간인들의 축구 사랑은 유명하다. 러시아 치하의 80년대에도, 소수민족들 간 내전으로 몸살을 앓던 90년대에도 아프간인들은 축구를 즐겼다. 심지어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던 1996~2001년에도 긴 바지와 긴 소매를 입고 공을 찼다. 그러나 연일 계속되는 폭탄테러와 공습은 국민이 축구에 눈 돌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프간 정규축구리그 로샨 아프간 프리미어리그(APL)가 개막한 가지 축구장은 과거 탈레반 시절 공개 처형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탈레반은 경기가 있는 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을 이용해 하프타임 때 절도범들을 끌고 나와 손, 발을 자르고 살인 혐의가 있는 자들은 총살했다. 경기장에는 아직도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탈레반에 암살 당한 부르하누딘 라바니 전 대통령과 과거 전쟁 영웅들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전쟁의 피 냄새가 여전하지만 아프간인들의 축구 사랑까지 막지는 못했다.
APL 열풍은 아프간 TV 채널 톨로의 축구선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작됐다. 인기 토크쇼 진행자 모크타르 라시카리가 전국을 돌며 축구 인재들을 뽑은 뒤 매주 혹독한 테스트를 거쳐 최고의 선수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뿔뿔이 흩어진 아프간인들을 TV 앞에 하나로 모으고 싶었다"는 그의 염원은 적중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18명을 포함, 각 지역을 대표하는 8개팀을 주축으로 9월 18일 프로 리그가 발족되자 국민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물론 첫 프로축구 리그의 사정은 열악하기만 하다. 8개팀의 선수 중 정식 계약을 한 선수는 한 명도 없다. 매 경기당 우리 돈으로 1만1,000원 가량을 지급 받는 것이 전부다. 지난달 19일 가지 경기장에서 축구 결승전이 열리는 동안 북부 도시에서는 도로에 매설된 폭탄이 터져 어린이 등 19명이 숨졌다. 그러나 전국 각지의 선수들이 모여 기량을 겨룰 수 있는 무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아프간인들은 행복하다. 톨로TV 창업자 사드 모세이니는 "10년 후에는 아프간 최고의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겨루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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