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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깃든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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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깃든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입력
2012.11.0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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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축이란 일상과 동떨어진 관념의 미학적 기준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토대 위에서만 규정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건축이 일상과 지향, 삶과 꿈의 총화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건축 안에는 개별 축조물뿐 아니라 축조물이 놓인 전체로서의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영위하는 삶의 가치까지 아울러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개별 건축물의 구조적 아름다움이나 미학적 가치를 저울질하지 않는다. 건축물이나 공간은 저자가 역설해 온 건축의 저 의미, 요컨대 건축이 연루된 삶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나 배경으로서만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절'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충남 보령의 성주사지 폐허(사진)를 소개한다. 저자는 건축가 특유의 공간지각능력을 발휘해 한때 번성했을 사찰의 풍경을 상상 속에서 복원하는 대신, 건축의 본질과 숙명을 앞세운다. "이 폐허는 쓸모 없게 된 사찰이 아니었다. 여전히 우리 삶의 부질없음을 끊임없이 가르치는 '보이지 않는 절'이었던 것이다. (…) 건축의 숙명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맑은 수묵화처럼 존재를 비움으로 완결하는 폐허이다. 그게 바른 건축이요, 그로써 진실이었다."'기억만이 진실하다'라는 장에서는 기념탑의 부질없음을 되새기며 모든 건축과 도시는 무너질 운명이며 "영원한 것은 우리가 같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며 그 기억만이 진실한 것"이라고 되뇐다.

침묵, 고독, 안식, 죽음, 보이지 않는 길…. 필자가 자주 허무의 미학에 기우는 듯 보이는 까닭은 아마도 건축의 이름으로 우뚝우뚝 서는 천한 욕망의 성전들과 무절제하게 팽창하는 도시 공간이 못마땅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노해의 시에서 따온 이 책의 제목처럼 오래된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까닭은, 세월의 무게와 갖은 사연들을 다 감당하며 나날이 정직하게 견뎌왔기 때문일 것이다. 설사 이제는 폐허로 남았더라도.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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