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부 존경하는 문인으로 김현, 김현 하는 거죠?"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를 만났을 때다. 문학, 출판 담당을 한지 3년쯤 됐을 무렵, 두 권의 영화비평집을 낸 정씨를 인터뷰 했을 때, 정씨는 뜬금없이 저런 질문을 쏟아냈다. 눈 밝고 글 매운 그의 저력을 알던 터라, 어설프게 아는 척하다 무안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풍문을 들었던 터라, 일찌감치 "당신이 평론집을 출간한 이유로, 오늘은 영화담당이 아닌 출판, 문학담당이 왔노라" 커밍아웃 하며 그를 만났다. 정씨는 이 고백에 오히려 반색하며 자신의 대답에, 문학에 관한 질문을 하나씩 덧붙였다. 영화와 문학에 관한 자기 고백에 가까운 대화가 탁구처럼 오갔을 무렵, 정씨는 문득 저런 질문으로 스파이크를 날렸다. "…아마도 진정성이 아닐까요?"라며 대답을 얼버무리며 집으로 돌아가 다시 펼쳐든 책이 김현 문학전집 14번째 책 이다.
이 책은 김현 작고 후인 1993년 출간된 전집 중 한 권으로 기획된 책인데 본래 1979년 문장사에서 간행된 과 1986년 나남에서 출간된 을 합친 책이다. 전자는 1973년부터 평론가 김현이 문예지 에 기고한 월평을 모은 것, 후자는 한국일보에 기고한 에세이를 모은 글이다. 김현의 가장 정력적인 시대인 30대 후반~40대에 쓰인 글로 짧은 작가론과 에세이, 영화평 등이 섞여 있어 와 더불어 일반 독자들에게 김현 비평의 입문 필독서로 꼽힌다.
난생 처음 글밥 먹고 사는 문인을 만나고 밑천 훤히 보이는 그들의 기사를 날마다 써야 했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샀던 것이 이 책과 김우창의 이었는데, 책을 제대로 읽었던 건 아마도 이때인 것 같다. 과거 80~90년대 문청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는 모르지만, 김현의 비평은 오늘의 에세이, 비평과 상당히 다르다. 요컨대 흔히 '미문'으로 꼽히는 김현의 문체는 (그의 전공인) 프랑스 문학의 잣대로 한국문학을 도식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당대 한국문학에 대한 자기자신의 심미안과 적확한 표현에 입각했다는 것, 때문에 그의 글은 생각보다 쉽고 간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평은 비평가 자신을 빛나게 하기보다 비평의 대상인 작가, 작품을 빛나게 했다. 김우창의 유려한 비평이 인간 사유의 깊이있음을 깨닫게 한다면, 김현의 진솔한 비평은 지식인의 솔직한 진술이 이루는 어떤 문학적 성취를 가늠하게 하는 글이다.
이 책을 세 번째로 챙겨 보게 된 건 1일 목포문학제가 열린 목포문학관 김현 전시관에서였다. 김현의 육필원고와 고은 등 문단 지인들이 김현에게 보낸 작품들과 나란히 전시된 이 전집을 시인 황지우는 "한국 근현대 역사에서 남겨질 위대한 책"이라고 평했다.
'문학비평은 비평가가 온갖 종류의 문학적 사실에 대해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법규를 만들어내는 분야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자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분야다. 문학 비평은 바로 그래서 온갖 종류의 의미 부여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의미 부여에 대해서는 온갖 종류의 찬성이나 반대가 가능하다. 그 가능성이 문학비평을 예술과 만나게 하고 있다.' (300쪽 '젊은 문학을 만나고 싶다') "글쎄요…."라고 얼버무린 정성일의 질문에 이제야 부연설명을 덧붙여 대답한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황지우 정현종 황현산 김치수 김병익 김광규 최두석을 비롯해 거의 모든 문인이 "김현, 김현"이라고 입을 모을 때, 그것은 김현 사후(死後)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신화와 전설이 되기를 바라는 문학계 바람이 작용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문학을 대하는 그의 진실한 마음과 겸손에 있다고. 김현의 유려한 문체는 "그의 정신에서, 깊은 주관성에서 비롯되어 나온다"(황지우)는 사실 때문이라고.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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