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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대박 열풍 '수능 아랍어 벼락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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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대박 열풍 '수능 아랍어 벼락치기'

입력
2012.11.0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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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한 고등학교 3학년생 김모(18)군은 요즘 국ㆍ영ㆍ수 핵심 과목보다 제2외국어 과목인 아랍어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아랍어 전공 대학생에게 16회 단기 고액 과외를 받으며 막판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군은 9월 수능원서를 내면서 학교에서 2년 넘게 배운 중국어 대신 아랍어로 제2외국어 과목을 바꿨다. 그는 "모의고사에서 중국어는 5등급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아랍어는 두세 달만 공부해도 1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해 수능을 앞두고 다급한 마음에 결심했다"고 말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 사이에서 아랍어 과목 이상열풍이 불고 있다. 운만 따라 주면 벼락치기로도 고득점을 받기 쉽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2013학년도 수능을 일주일 앞둔 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ㆍ양천구 목동의 대형 입시학원들에서는 아랍어 특별반 수업이 한창이다. 대치동 한 재수학원에서 만난 최모(20)씨는 "중국어나 일본어는 해당 언어권에서 살다 왔거나 외고에서 전공하는 학생이 많아 고득점이 어렵다"며 "반면 아랍어는 거의 모든 학생이 백지에서부터 시작하는 일명 '주인 없는 언어'라 아랍어를 선호하는 수험생이 많다"고 말했다. 목동의 한 학원 관계자는 "제2외국어가 필수인 서울대 지원자들이나 사회탐구 과목을 대체하려는 인문계 상위권 학생들이 주로 아랍어를 선택한다"며 "다른 제2외국어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표준점수도 높아 상위권 학생들이 몰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수능에서 아랍어를 선택한 학생은 전체 제2외국어 응시생 중 약 40%로 절반에 육박할 정도다. 하지만 전국 1,565개 고교 중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일반계 고교는 경기, 울산, 광주에 각각 1곳뿐이다. 전문가들은 아랍어가 교육적 기능을 상실한 채 고득점 전략 과목, '수능 대박'의 수단으로만 전락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슬람 문화권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처음 수능과목으로 채택된 2005학년도 수능시험에 아랍어를 선택한 학생은 531명으로 전체 제2외국어 응시자 중 0.4%에 불과했지만, 8일 치러지는 2013년도 수능시험의 아랍어 선택 인원은 3만6,000여명(40%)으로 100배 가까이 늘었다.

이렇게 폭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치러진 2012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 전체 제2외국어 응시생 중 약 46%가 선택한 아랍어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80점. 두 번째로 많은 수험생이 선택한 일본어의 66점과 비교하면 무려 14점이나 차이 난다. 원점수로 똑같이 만점을 받더라도 손에 받아 드는 점수는 아랍어 선택자가 월등히 높은 셈이다.

권오현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은 식이라면 누구나 시험 전에 반짝 공부해서 좋은 점수 받으려 할 것"이라며 "대학 입시에서 표준점수 대신 원점수나 합격·불합격으로 결과를 내는 식의 제도 개선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2외국어교육정상화추친위원회 공동대표 위행복 한양대 국제문화대학 교수는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재가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하지만 제대로 된 아랍어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선 고교 과정에서부터 체계적·지속적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이서희기자 sherlo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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