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정감사에서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31일 성노현 서울대 연구처장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논문 연구부정행위 의혹에 대한 예비조사 결정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서울대 관계자는 “(예비 조사 결정은) 원칙에 따른 것일 뿐 정치적 해석은 말아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과연 원칙에 따른 것일까. 현재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연구부정행위에 관한 심의는 제보접수→예비조사→본조사→결과 조치 4단계로 진행된다. 문제는 제보를 접수한 후 예비조사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연구진실성위원회 규정 제8조에 따르면 예비조사위원회가 구성되려면 ‘제보가 진실하다’는 판단이 있어야 한다. ‘국회의 요구’만으로는 예비조사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서울대의 안 후보의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조사 착수는 의혹의 내용보다 ‘누가 제기했냐’를 더 중시한 꼴이다.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은 사회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할 일이고, 서울대가 의혹이 타당하다는 판단을 했다면 마땅히 문제가 된 논문 5편에 대한 조사를 벌써 했어야 했다. 표절과 중복게재 의혹은 국감 훨씬 이전에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논문 연구부정행위와 관련한 규정은 2006년 신설됐다. 논문표절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20년 전 논문에 ‘인용 없이 6개 이상 같은 단어를 사용할 경우 표절로 간주한다’는 등의 강화된 오늘의 기준을 대입시키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논란은 불 보듯 뻔하고, 안 후보 측이 수긍할지도 의문이다. 이번 예비조사 결정을 내린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지난 2005년 ‘황우석 사태’로 서울대가 홍역을 치른 뒤 설립됐다. 두 번 다시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만든 고통의 산물이다. ‘국회의 요구라 어쩔 수 없었다’는 말 자체가 벌써 ‘아세’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여기에 대학의 존립근거인 독립성과 자율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조원일 사회부 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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