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통령 선거는 대기업 인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권력과 줄대기가 기업성패의 결정적 변수였던 만큼, 주요 그룹들은 사장단 및 임원인사를 대선결과를 보고 난 뒤로 미루곤 했다. 그리고 지연이든 학연이든 새 지배권력과 가까운 인사들이 대기업의 핵심포스트를 차지하는 건 당연한 관행이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엔 PK출신들이 약진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엔 호남인맥이 부상했으며, 노무현 정부 때는 부산라인, 이명박 정부에선 TK그룹에 힘이 실렸다.
이번 대선도 대기업 인사시즌 한 가운데 있다. 재계에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압박이 어느 때보다 거센 시기인 만큼, 대기업들이 경영진인사를 당선자 결정 이후로 미룰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하지만 삼성 LG 등 주요 그룹들은 더 이상 '눈치보기' 없이 대선일정과는 무관하게 사장단인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2월 첫째 주 사장단 인사를 실시하고 1주일 뒤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할 계획이다. 대선 전에 모든 인사가 끝나는 셈이다.
삼성도 2002년과 2007년 대선 때에는 사장단 인사를 1월에 했다. 하지만 대선 눈치보기 차원이 아니라, 그 때는 원래 정기인사를 매년 1월에 했기 때문이었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삼성관계자는 "인사를 빨리 끝내고 새로운 진용으로 새해 사업을 시작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 따라 2008년부터는 계속 12월에 정기인사를 실시했다"며 "대선 때문에 인사일정에 변동이 오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사 폭에 대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가 이미 6,7월에 이뤄졌기 때문에 사장단 변동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임원의 경우 전체 직원의 0.8%를 유지하고 있는데 직원수가 늘어난 만큼 임원승진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ㆍ기아차그룹도 마찬가지. 내달 28,29일쯤 정기인사가 단행될 예정인데, 원래 매년 그 시기에 해왔기 때문에 대선일정과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최근 일부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선 때문에 인사를 당기거나 늦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룹 고위관계자는 밝혔다.
LG그룹도 대선 전인 12월 첫 주에 인사를 단행할 방침이다. LG 관계자는 "현재 시작된 계열사별 업적평가와 새해 추진계획 일정이 끝나면 평상시대로 내달 초에 인사를 끝낼 것"이라며 "구본무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시장선도능력'이 중요한 것이지 대선결과가 인사향방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SK나 한화그룹은 총수의 재판이 변수이긴 하나, 현재로선 예년대로 시행하는 것을 전제로 실무인사작업을 진행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인사관행에서도 과거 정경유착관계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유인호기자 yi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