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자였던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A양. 지난 6월 A양을 때려 징계를 받은 가해 학생은 "A양에게 언어폭력을 당했다"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자치위)를 요청했다. A양은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징계를 받았고, 교육과학기술부의 방침에 따라 이 사실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됐다. 졸지에 학교폭력 가해자가 된 A양은 서울시교육청에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행정심판위원회는 "A양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A양이 이번 대입에서 받을지 모를 불이익까지 구제받지는 못한다. 이미 수시모집에 제출한 학생부는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오성근 입학전형지원실장은 "대학은 현재 제출된 서류로만 학생을 평가한다"며 "서류상 변동이 생기면 학생이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에 대한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억울한 징계와 기재에 대해 행정심판을 제기하는 일이 크게 늘었고, 절반 이상이 받아들여졌다. 1일 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0건이었던 학교폭력 관련 행정심판은 올해 26건이 제기돼, 이중 12건에 인용 결정이 내려졌다. 11건이 기각, 3건은 진행 중이다. 자치위 징계에 대해 이의가 있는 학부모는 학교장을 상대로 시·도교육청에 행정심판을 낼 수 있다.
서울 시내 초등학교 6학년 B군도 하마터면 학생부에 5년간 학교폭력 가해자로 기록이 남을 뻔했다. B군은 지난 6월 수개월째 자신을 때리고 괴롭혀온 C군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C군을 밟아버리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C군은 B군을 잡으러 뛰어왔고, B군은 C군의 안경을 낚아채 바닥에 던졌다. 주변 친구들이 말려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B군은 자치위에서 서면사과 처분을 받았다. 물론 C군이 더 큰 징계를 받았지만, 방어를 위해 안경을 낚아챈 B군 역시 학교폭력 가해자가 된 셈이다.
B군은 행정심판을 통해 이 처분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학생부기록이 지워지지 않는다. 행정심판을 제기한 학부모의 주장이 인정돼도 대체로 가벼운 처분으로 변경하라는 결정이 나오고, 이럴 경우엔 여전히 학교폭력 가해자로 기재되기 때문이다. 시교육청 전수민 변호사는 "B군처럼 처분을 취소하라는 인용 결정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이 과하니 다른 조치를 하라는 취지의 인용"이라며 "행정심판을 낸 학부모들은 아예 징계 사실을 없애달라는 건데 결과적으로 실익이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반 친구의 책상과 의자를 대걸레로 닦아 교내봉사 3일과 전문상담교사 상담 징계를 받은 서울의 한 중학교 1학년 D군이 이와 같은 경우다.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자치위를 다시 열어 기존 조치보다 경미한 다른 조치로 변경하라"는 결정을 받아 징계만 달라질 뿐 학생부 기록을 아예 삭제할 수는 없다.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는 시행 초기부터 가해·피해를 가리기 어려운 아이들간 다툼까지 학교폭력으로 규정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단 자치위가 열리면 A양이나 B군처럼 억울하게 연루된 학생들까지 가벼운 조치라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별교육이수 30시간 처분을 받은 초등학교 6학년 E군도 "친구의 싸움을 말리려다 휘말렸다"고 행정심판을 제기했지만 "경미한 다른 적합한 조치로 변경하라"는 인용결정을 받아 가해자의 낙인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참교육학부모회 장은숙 회장은 "폭력 사건이 생기면 학교가 화해와 조정 등 교육적으로 풀려고 하지 않고, 쉬쉬한다고 할까 봐 무조건 자치위에 올려 학생들을 폭력 가해자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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