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킹' 이승엽(36ㆍ삼성)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유독 말이 없었다. 8년 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만큼 말 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길 원했다. 덕아웃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건 안지만(29), 최형우(29) 등 후배들 몫이었다. 베테랑은 묵묵히 경기장에서 결과로 보여주면 된다고 믿었다.
그런 이승엽이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1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2012 팔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 6차전에서 SK를 7-0으로 꺾고 4승2패로 2연패를 달성,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뒤였다. 이승엽은 이번 한국시리즈 6차전에 모두 출전해 23타수 8안타 타율 3할4푼8리에 7타점 4득점을 올렸다. 양 팀 통틀어 가장 돋보이는 활약이다. 기자단 투표에서 71표 중 47표의 지지를 받은 이승엽은 생애 첫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었다. 각각 2승을 올린 장원삼이 10표, 윤성환이 8표였다.
이승엽은 MVP에 뽑힌 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규시즌 MVP를 탔을 때는 2001년을 제외하고 모두 예상했던 게 사실"이라며 "후배인 장원삼이나 배영섭이 탈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해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이어 "어느 해 보다 가장 뜻 깊은 한 해다.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운 시즌(2003년)보다 기쁘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올해 내 자신에게 100점을 주고 싶다. 목표였던 3할 타율, 30홈런, 100타점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과 MVP까지 받아 행복하다"고 웃었다.
사실 이승엽의 야구 인생은 대부분 해피 엔딩이었다. '국민 타자'라 불리며 각종 기록을 세웠고 지금까지 받은 트로피는 셀 수 없다. 골든 글러브 7차례, 시즌 MVP(최우수선수) 5차례, 홈런왕 5차례 등 좀처럼 깨지기 힘든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또 일본에서 2005년 재팬시리즈 우수 선수상을 받았고,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초대 홈런왕 및 타점왕의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이승엽은 그 동안 한국시리즈 MVP와는 인연이 없었다.
기회는 있었다. 2002년 LG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극적인 동점 홈런을 터뜨리며 팀의 우승에 일조한 것이다. 이승엽은 당시 6-9로 뒤지던 9회 LG 마무리 이상훈을 상대로 우월 3점 홈런을 터뜨렸다. 하지만 MVP는 곧바로 역전 홈런을 터뜨린 마해영에게 돌아갔다. 생애 첫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 이승엽은 '조연' 역할을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주연'으로 우뚝 서는 데는 정확히 10년이 걸렸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이승엽의 활약 여부에 좌지우지됐고 6차전 역시 이승엽의 한 방으로 승부가 갈렸다. 큰 경기에 유독 강했던 '국민 타자'는 이날도 강렬한 모습을 보였다.
1회는 3루수 파울 플라이, 3회엔 중견수 플라이였다. 추운 날씨에 몸이 덜 풀린 듯 방망이는 무겁게 돌아갔다. 특히 1회 무사 1ㆍ3루 찬스에서 초구 한 가운데 직구에 타점도 올리지 못한 건 뼈아픈 결과였다. 4번 최형우의 희생 플라이가 나오지 않았다면 삼성은 어려운 경기를 이어갈 뻔했다.
하지만 이승엽은 4회초 2사 만루에서 '한 방'능력을 과시했다. 볼카운트가 1볼 2스트라이크로 불리했지만 상대 구원 채병용의 바깥쪽 직구를 잡아당겨 싹쓸이 3루타로 연결했다. 생애 첫 포스트시즌 3루타. 이 한 방으로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나머지 타석에서는 안타를 추가하지 못했지만 이승엽은 올 시즌 연봉 8억원 이상의 가치를 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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