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정치적 불륜에 빠졌다. 두 사람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 선거 막판 오바마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정적 관계인 두 사람을 묶어준 것은 허리케인 샌디다. 둘은 지난달 31일 대통령 전용헬기를 함께 타고 1시간 동안 샌디가 할퀴고 간 애틀랜틱시티를 둘러봤다. 재해 현장에서 주민들을 함께 위로하고 공동 인터뷰까지 열어 서로를 칭찬했다. 크리스티는 "뉴저지의 고통을 아는 미국 대통령이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며 "오바마가 시의적절하게 행동했다"고 감사를 표했다. 오바마는 크리스티의 지도력을 칭찬하며 "여러분의 주지사는 (재난 대처로) 과로하고 있다"고 했다. 백악관이 함께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자 크리스티가 답신하는 우의도 보였다.
미 언론은 오바마와 크리스티의 만남을 야합, 이색 커플, 있을 법하지 않은 한 쌍으로 표현하며 파장을 조명했다. 둘의 동행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 캐슬린 블랑코 루이지애나 주지사가 책임공방을 한 것과 대조된다. 오바마가 국난에 초당적 대처를 하는 지도자 모습을 보여줘 재선에 한발 다가설 모멘텀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더구나 크리스티는 9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밋 롬니 후보를 위해 기조연설을 한 오바마의 저격수였다. 열흘 전에도 오바마가 지도력이란 스위치를 못 찾고 헤매고 있다고 비난했다.
롬니의 대리인으로 불리던 크리스티가 오바마의 적에서 동지가 된 외견상 이유는 이번 재난에 연방정부 지원이 절실한 때문이다. 오바마는 이날 뉴저지 구호품 수송에 C-130 수송기를 투입했다. 그러나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오바마의 현장 방문을 "아직은 때가 아니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공화당은 일찍부터 오바마를 이길 대선후보로 크리스티를 점 찍고 삼고초려 했으나, 그는 출마를 거부하고 2016년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를 해왔다. 이런 크리스티에게 롬니의 당선은 그의 재선 출마까지 감안할 때 4년이 아닌 8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와 크리스티가 계속 동행할 정치적 계산이 맞아 떨어진다. 롬니 선거캠프는 두 사람이 서로 맡은 역할을 한 것뿐이라면서도 부담스런 모습이다.
오바마는 사흘간 선거유세를 중단하고 샌디 대처에 주력하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와 abc 공동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78%가 오바마가 샌디 대처를 잘했다고 평했고, 전국 지지율에서도 오바마가 마침내 롬니와 49% 동률을 이뤘다. 3대 핵심 경합주의 경우 오하이오에서는 4개 조사 모두를, 버지니아에선 3개 중 2개를 오바마가 이겼고, 롬니는 플로리다의 4개 조사 중 2개만 앞섰다. 그러나 샌디는 오바마에게 시련도 안겨주고 있다. 오하이오와 버지니아, 필라델피아에서 정전 사태가 지속되는 곳이 하필이면 민주당 강세지역이다. 이들 지역의 투표율이 낮아진다면 오바마의 재선에 예기치 못한 경고음이 울릴 수 있다.
오바마는 1일 위스콘신 네바다 오하이오에서 유세를 재개하고, 롬니는 버지니아에서 유세한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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