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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제주 오름에서 지혜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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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제주 오름에서 지혜를 배우다

입력
2012.11.0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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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갔다. 더 추워지기 전에 제주 오름 두어 개 정도를 올라볼 생각이었다. 제주는 어느 날 화산이 터져 바다에 섬이 생긴 이래로 거기 그렇게 태초부터 있던 모든 것들 때문에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멋진 영감을 주는 곳이다. 생각해보면 제주는 손을 내밀어 무엇을 주거나 받으라고 말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거기서 많은 걸 얻어간다. 제주 바다, 제주 바람, 제주에 있는 산과 나무들….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오름이다. 지금처럼 올레길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기도 전에, 사람들이 관광차에 나눠 타고 풍경 좋은 오름을 찾기 전에,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나는 오름을 알았고 한두 번 거기에 오른 일이 있다. 어릴 때 일이다.

아주 오래 전, 그것을 '오름'이라고 말하는 것도 조금은 생소했던 그 때, 처음으로 오름에 갔다가 받은 느낌이란 지금껏 보고 들은 어떤 예술작품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그때 나는 그걸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얘기해주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말 힘이 센 사람이 아니다. 그림이나 노래는 물론이고 사진을 찍는 실력도 별로였기 때문에 내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에 결국 실망했다.

한참동안 그렇게 실망한 상태로 살다가 그마저도 잊어버리고 이십여 년 시간이 흘렀다. 물론 그 사이에도 오름은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다녔고 요 몇 년 사이에는 저가항공이라는 것도 생겨서 제주까지 가는 길이 더 쉬워졌다. 학교를 졸업한 다음 일을 하게 되었고, 돈을 벌고, 제주에 갈 때마다 조금씩 더 비싼 디지털사진기를 어깨에 두르게 되었다. 그걸로 멋지게 오름 사진을 찍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고, 사실은 내가 거기에 갔던 것을, 그 멋진 풍경을 내 눈으로 직접 봤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도 아주 없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곱 시 반 비행기를 타니 한 시간도 안 되어 제주에 도착한다. 이런 말 할 나이는 아니지만 세상 참 좋아졌다. 아홉시 즈음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서쪽으로 달리니 애월읍 지나 넓은 들판 한 가운데 봉긋하게 튀어나온 둔덕이 보인다. 새별오름이다. 오름은 높지 않아서 가다 쉬다 하며 삼십분 정도 오르니 정상이다. 날씨는 흐렸지만 거칠 것 없이 늘어진 저 밑 땅들 너머로 바다까지 보이는 것 같다. 바닥에 앉아서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천천히 둘러보니 내가 있는 곳 오른쪽엔 골프장이 있고 왼쪽엔 중장비들이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를 한가득 뿜어내며 공사가 한창이다. 내려갈 때 공사장 입구에 있는 안내 글을 보니 오름 주변에 기반시설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오름은 그 자체로 완전한 자연이고 풍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어떤 기반시설이 또 필요한지 모르겠으나 굴착기는 쉴 새 없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을 파댄다.

그럼에도 나는 사진기를 꺼내서 골프장과 공사하는 곳이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사진 속에 있는 풍경은 멋지고 아름답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사진을 갖고 서울로 올라가서 또 사람들에게 자랑이나 하려는 건 아닐까? 차라리 내가 해야 할 일은 골프장을 피해 멋진 풍경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라 거기 사람들이 일부러 파헤쳐놓은 아픈 구덩이가 있음을 슬퍼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연을 이용하려들지 말고 평화의 영감을 얻어야 한다. 중문 관광단지에 평화를, 표선해수욕장에 평화를, 용두암에 평화를, 구럼비에 평화를. 자연은 사람들이 중장비를 가져와 고치려들지 않을 때 더 많은 것을 내어준다.

이날 나는 라는 책을 쓴 작가겸 도보여행가 베르나르 올리비에 씨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일흔 살이 넘은 나이였지만 지금껏 2만km를 걸었고 그만큼 건강해보였다. 베르나르 씨는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을 배우라고 말했다. 고독하게 걷는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런 행위이다. 가만히 두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며 그렇게 얻은 것이야말로 진짜 지혜라고 부를 만하다. 외롭고 고독하게 거기 오랫동안 서있는 이름 모를 나무와 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우리는 때로 우주의 신비를 생각하지 않던가. 삶의 지혜는 바로 그 안에 있다.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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