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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 이기론 400년 논쟁은 오해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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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 이기론 400년 논쟁은 오해에서 비롯됐다"

입력
2012.11.0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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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의 차이가 공방 불러

퇴계, 理·氣를 나란히 배치'횡설'

대비적 속성·갈등 관계로 봐

율곡은 수직으로 배치'수설'

더불어 변하고 동반하는 관계로

횡설과 수설은 헛소리 아니다

성리학 현대로 거듭날 가능성 제시

한국사회 보수/진보 담론에 대입

"학계 불편한 반응, 지적 폐쇄주의"

세계철학사에서 조선 유학의 성리 논쟁만큼 격렬하게 오래 간 논쟁은 없을 것이다. 퇴계 이황이 죽고 2년 뒤인 1572년, 율곡 이이가 퇴계를 비판하면서 시작된 논쟁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400년 이상 이어졌고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처음에는 학술 논쟁이었으나 나중에는 분당에 따른 대립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퇴계와 율곡, 두 학파가 서로를 원수 보듯 하여 반목과 갈등이 극에 달했다.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리(理)'와 '기(氣)', 두 글자를 둘러싼 이 논쟁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예문동양사상연구원이 펴내는 학술지 의 '논과 쟁' 코너를 통해 2006년부터 3년간 이기논쟁이 다시 벌어졌지만,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채 수많은 학자들의 난타전으로 끝났다.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는 왜 400년 동안이나 평행선을 달렸을까. 철학자 이승환(56ㆍ고려대 철학과 교수)의 (휴머니스트 발행)은 이 수수께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리 논쟁은 프레임(사고의 틀)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못 알아들어 치고 받았다는 소리다. 이 주장이 맞다면, 그 오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논문은 다시 쓰거나 폐기돼야 할 판이다. 한바탕 격쟁에 불을 붙일 도화선 같은 책이다.

이 교수는 성리 논쟁이 오해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원인을 '횡설(橫說)'과 '수설(竪說)'의 충돌이라는 기호학적 프레임으로 해명한다. 퇴계는 리와 기를 마음의 대비적 속성으로 보고 나란히 배치하는 횡설에 입각해 주장을 펼치는 반면, 율곡은 이 두 기호를 수직으로 배치하는 수설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퇴계의 횡설에서 리와 기는 갈등 관계이지만, 율곡의 수설에서 그것은 리가 기를 타고 공변(共變ㆍ더불어 변함)하는 승반(乘伴ㆍ올라타고 동반함) 관계다.

프레임의 차이가 빚어낸 오해는 성리학의 핵심 개념이 지닌 중의성 때문에 더 헝클어졌다. 리와 기의 개념에는 각각 존재론적 의미와 가치론적 의미가 중첩돼 있다. 존재론적으로 보면 리/기는 '형이상의 원리/형이하의 재료'이지만, 가치론적으로 보면 '도덕성향/욕구성향'을 가리킨다. 즉 어떤 맥락에서 쓰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지만, 구분 없이 쓰는 바람에 혼돈이 더 커졌고 결국 퇴율 두 학파 간에, 심지어 같은 학파 안에서조차 의사 소통이 안 됐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 성리학자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동서양 공히 근대 이전에는 존재와 당위를 선명하게 구분하지 않고 썼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책은 어지럽게 뒤얽힌 조선 성리 논쟁의 실타래를 단번에 풀어버리는 쾌도난마다. 개념의 미로에서 더 이상 헤매지 않고 정확한 담론을 전개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역작이다.

성리 논쟁의 오해를 말끔히 씻어낸다는 점 외에 이 책이 지닌 중요한 의의는 조선 성리학이 죽은 공리공론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대철학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횡설과 수설이 충돌해 오해로 끝났다니, 조선 성리학은 결국 횡설수설 헛소리였다는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성리논쟁의 횡설과 수설은 각각의 맥락에서는 매우 유효한 틀이며, 오늘날 사회의 변화나 문화 변동을 설명하는 '사회 동역학'으로도 아주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그는 역설한다. 책은 현대 한국 사회의 보수/진보 담론을 횡설과 수설로 분석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 책은 학계를 불편하게 할 것이 틀림 없다. 이미 그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최근 1년 간 이 책의 논증을 소개하는 논문 6편을 써서 학술지 게재를 신청했다가 탈락 또는 수정 권고를 받았다. 그에게 전혀 없던 일이다. '존재와 당위는 서양철학 개념인데 왜 동양철학에 적용하느냐'는 지적부터 '성리학은 분석 대상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라며 '퇴계의 종지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게재할 수 없다'는 심사평까지 있었다.

그는 이러한 반응을 '지적인 폐쇄주의'라고 질타한다. 조선 성리학은 이제 서양 현대철학과 당당하게 어깨를 견주는 오늘의 사상으로 거듭나야 하며,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는데도 오류에 갇힌 채 기존 틀을 고집함으로써 스스로 고사(枯死)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떠들어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후학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의 도발에 학계가 어떻게 대응할지 자못 궁금하다.

오미환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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