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아이들이 만화영화 로봇 태권V에 열광할 때, 태권V를 설계하고 수리하는 김 박사를 동경하던 아이가 있었다. 라디오 내부가 궁금하다며 망치로 쾅쾅 두드리던 다섯 살 꼬마, 일곱 살엔 사람과 물고기 몸 속에 심장 대신 엔진을, 혈관 대신 전선과 볼트, 너트를 그려 넣었다. 이 소년은 자라서 움직이고 숨 쉬는 기계 생명체를 설계하는 키네틱 아티스트가 된다.
영화 '도둑들'초반, 천천히 피고 지는 탐스러운 꽃 샹들리에 '우나 루미노'의 작가 최우람(42)씨 얘기다. 키네틱 아트의 시초, 알렉산더 칼더의 바람에 움직이는 조각을 떠올린다면, 스스로 움직이는 최씨의 작품은 예술보다 과학에 가까워 보인다. 수 억 원을 호가하는 기계 생명체로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려온 최씨가 10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연다. 30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어린 시절 그림부터 기계 생명체 시리즈 신작까지 8점의 키네틱 아트와 드로잉 50여 점이 전시됐다.
"대학시절(중앙대 조소과)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면서 기계를 유독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모든 생명체에는 움직임이 있으니, 기계의 움직임을 통해 생명과 인간 본질, 역사까지도 표현해보고 싶었지요." 1일 전시장에서 만난 최씨는 "기계 생명체에 신화적 탄생 스토리를 더해 인간의 본질과 종교를 향한 맹목적 믿음, 정보사회의 양면성을 담아냈다"고 했다.
숨을 쉬기 위해 얼음에 구멍을 뚫는 바다표범에서 착안한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은 두 세계를 연결하는 수호신이다. 다른 세계의 존재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자 두 세계는 완전히 분리되어 수호신도 존재의미를 잃었다. 뼈만 앙상한 그것이 이따금 복부를 움직이며 호흡하는 모습에서 생명이 붙어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이 시대 소통의 부재를 은유한 작품이다.
2년 여전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로 권력과 정치의 이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그는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는 4m 높이의 검은 천사, '허수아비(Scarecrow)'도 만들었다. 전선으로 만들어진 이것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무장해제된 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자와 통제하려는 자 사이의 관계를 들녘에서 인간을 돕는 동시에 새에겐 두려운 존재인 허수아비에 빗댄 것이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현대사회를 보려고 해요. 당대엔 영원하다고 생각하지만 거대한 역사적 줄기에서 보면 모든 문명과 사회는 흥망성쇠를 겪게 마련이거든요. 현대 사회는 정보의 힘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죠."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부임한 그는 "학생들과 만난 후 세상을 보는 시야가 크게 확장됐다"면서 "이번 전시에서 그 변화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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