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유력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경제민주화 공약은 아직도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한 채 피상적 논의에 머물고 있다.
오늘날 대다수 국민의 삶이 힘든 것은 비정규직 증가, 재하청 재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기업간 착취, 중소기업과 서민을 등치는 금융의 탐욕 등 때문이다. 반면 유력 대선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금산분리 순환출자금지 출자총액제한 등 재벌 정책에만 매달려 있어 대부분 유권자들은 흥미를 잃고 말았다.
물론 우리 경제가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재벌의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 하지만 설사 재벌을 해체해 기업생태계가 바뀌고 신생 기업들의 성공이 이어진다 해도 결국은 대기업의 주인만 바뀔 뿐 비정규직, 기업간 착취, 금융의 탐욕은 별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시장에서 성공하는 기업은 언제나 소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벌 해체에 앞서 시장 메카니즘 자체에 대한 수정과 보완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정부가 금융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하고, 정치인에 대한 초대형 금융회사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세계 경제가 극소수 금융자본에 휘둘렸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문제도 이런 거대 국제 금융자본을 제어한다면 많은 부분을 해결 또는 완화할 수 있다.
현 정부 들어 민자 인프라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는 호주의 맥쿼리나 천문학적 수익을 거두고 떠난 미국의 론스타와 같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올 6월말 기준 49.5%에 달한다. 현대차도 43.8%가 외국자본 소유다. 신한 국민 하나 등 대형 금융지주회사의 외국인 지분은 60%가 넘는다. 가뜩이나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느라 전전긍긍하는 기업 오너들은 외국인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기업이 거둔 이익을 종업원 처우 개선이나 기술 발전에 재투자하기 보다는 배당이나 주가를 떠받칠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게 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노무현 정부 5년간 순이익 중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에 사용한 비율이 2.52%였으나, 현 정부 들어 그 비율은 11.5%로 급증했다. 지난 4년간 삼성전자의 배당금 지급액은 3조3,500억 원이고 현대ㆍ기아차는 2조원 가량이다. 이중 절반이 외국인에게 넘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순환출자를 금지한다면 대기업 오너들은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6조1,000억원, 삼성은 1조2,000억원이 필요하다. 반면 현대차가 사내 비정규직 8,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드는 비용은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추산으로 연간 2,859억 원에 불과하다.
만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의 제안대로 정부가 대기업 오너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는 대가로 대기업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납품기업에 대한 보상을 늘릴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복지기금도 확충하도록 한다면 경영권을 보호하느라 외국자본에게 쏟아 붓는 천문학적 금액을 양극화 해소에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그만큼 내수 경기도 활성화해 경제회복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 민영화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산업은행이 주도적으로 예금금리를 인상하고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인하하자 민간 금융기관이 뒤따르는 데서 볼 수 있듯이 공공성을 갖춘 금융회사가 존재해야 외국인 지분이 절반을 넘는 민간 금융회사들을 간접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규제가 강화된다면 권한이 커질 관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하지만 '탈규제'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던 지난 20여 년간 감독기관 고위직과 관련 기업 간 유착이 더 지능화ㆍ구조화했다는 점에서 볼 때 시장도 관료만큼 부패하기 쉽다. 결국 정부와 관료 대한 감시와 견제는 시장이 아니라 시민이 맡아야 한다. 진짜 주인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외국 자본에 시장질서를 맡기는 것보다 선거로 심판할 수 있는 정부에 맡기는 것이 더 감시가 쉽지 않겠는가.
정영오 경제부차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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