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준비를 위해 5년 전 한 손해보험사의 연금저축 상품을 들었던 직장인 김모(35)씨는 매달 30만원씩 붓다가 최근 목돈이 필요해 중도 해지를 했다. 원금만 쳐도 1,600만원에 육박했는데 김씨에게 돌아간 해지환급금은 1,200만원 남짓에 불과했다. 가입 초기 수수료를 10% 넘게 뗀데다 5년 내 해지한 탓에 기타소득세 22%와 해지가산세 2.2%가 붙어 환급금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게 보험사의 답변이었다. 김씨는 "연금저축이 장기 상품이라 10년, 20년 버틸수록 수익률이 좋다고 하지만 저금리 시대라 앞으로 공시이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큰데다 사업비 명목으로 보험사가 7년간 수수료를 떼가니 만기까지 가더라도 은행 예금보다 수익이 높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소비자가 직접 은행(신탁), 자산운용사(펀드), 보험사(보험)의 621개 연금저축상품 수익률과 수수료 등을 비교ㆍ평가할 수 있는 '연금저축 통합 공시시스템'이 지난달 31일 문을 열었다. 연금저축은 10년 이상 일정액을 적립해 만55세부터 5년 이상 원리금을 연금처럼 타 쓰는 장기 저축상품으로 절세효과(연간 400만원 한도 소득공제)도 누릴 수 있어 인기가 높다.
하지만 성적을 공개하니 수익률은 저조했고 10년 계약 유지율은 평균 52.4%에 불과했다. 노후 대비 필수품인 연금저축을 가입하기 전에 참고하라고 공시 사이트를 열었는데, 고객 입장에서는 '원금도 못 챙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만 짊어지게 된 셈이다.
연평균 수익률이 가장 나쁜 곳은 보험업계다. 특히 생명보험사보다 손해보험사의 수익률이 더 안 좋았는데 각 회사가 가장 많이 판매한 상품을 기준으로 8개 손보사 중 7개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상품별로는 지난해 4월 선보인 롯데손보의 '3L명품 연금보험'의 수익률이 -9.53%로 가장 낮았다. LIG손보의 '멀티플러스연금보험'(-9.43%), 삼성화재의 '연금보험 아름다운생활'(-9.32%)도 낮았다.
생보사 가운데엔 IBK연금의 'IBK연금보험'(-3.65%), ING생명의 '세테크플랜 연금보험'(-3.40%) 등 2010년 출시한 상품의 성적이 대체로 좋지 않았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보험사는 첫해 사업비 명목으로 떼가는 수수료율이 높아 다른 업권보다 상대적으로 단기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며 "10년 이상 된 상품의 수익률은 낮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험사는 돈을 붓는 첫해 수수료율이 평균 11.12(생보)~13.97%(손보)에 이르지만 차차 낮아져 30년차엔 0.07% 수준이 된다. 반면 자산운용사(0.7%)와 은행(0.77%)은 첫해 수수료가 낮은 대신 30년이 지나도 0.81~1.24%로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이런 구조를 감안할 때 단기 성과만 부각하면 보험사가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연금저축 도입 첫 해인 2001년 판매된 상품들만 비교하더라도 손보사 상품(23개)의 연 평균 수익률이 3.79%로 가장 낮았다. 생보사(3.99%), 은행(4.20%), 자산운용사(7.70%)가 뒤를 이었다. 아무리 저금리 시대라지만 지금도 각종 우대금리를 더하면 3%후반대 이상의 금리를 받을 수 있는 1년짜리 예ㆍ적금 상품이 많은데 10년을 투자한 것 치고는 연금저축의 금리가 매우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잡아놓은 물고기(고객)에게 먹이(투자 수익금)를 주지 않고 있는 셈"이라며 "보험사들이 장기 고객의 수익률 관리에 소홀하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은행의 연금신탁 중에는 제주은행의 '연금신탁'(2.80%), 농협은행의 '연금신탁'(3.22%)이, 자산운용사는 IBK자산운용의 '증권 전환형 자투자신탁'(1.92%)과 교보악사자산운용의 '행복한 연금증권 자투자신탁1호'(2.84%)의 수익률이 유독 낮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수익률이 실망스럽거나 개인사정을 이유로 중도 해지하는 사람이 많은데 무조건 중도 해지는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며 "보험료 납부를 잠시 멈추거나 다른 상품으로 계약 이전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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