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때 컴퓨터게임을 했다고? 넌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흔히들 하는 잔소리다. '게임이 없다면 아이들이 그나마 스트레스를 어디서 풀겠어요?'란 말을 누군가 눈치없이 한다 치자. 매서운 눈초리가 돌아 갈 것이다. '스트레스는 무슨 스트레스에요! 요즘 애들은 부모들이 다 지원해 주고 공부만 하면 되는데, 공부처럼 쉬운 게 어디 있어요, 공부 안 해서 나중에 뭐가 되겠어요!'그 쉽다는 공부 이야기가 공포 영화의 살인마처럼 무섭다.
'선생님, 한 달 반 금주를 했다가 회사에 골치 아픈 일이 있어 딱 한잔만 하자 했는데 주일 내리 먹었어요, 의지가 약한 제 자신이 너무 싫습니다.'우람한 체격에 수컷의 남성미가 강하게 풍기는 사장님의 자기 질책이 안쓰럽다. 의지가 정말 약해서 술을 못 끊는 걸까? 그 분의 자수성가담을 들어 보자면 뚝심의 의지밖에 안 보이는데.
뇌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중독 경향이 생긴다. 중독이란 '금단 증상으로 이루어진 의존성'이라고 의학적으로 정의된다. 내성은 처음 자극과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더 독하고 진한 자극이 필요해지는 것을 이야기한다. 더 강한 자극이 없어 그 효과에 이르지 못하면 심리적ㆍ신체적 금단 증상이 생기니, 간단한 게임이 아니다.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 끝없이 더 깊은 중독으로 빠져든다. 중독과 뇌의 보상 시스템은 이성이 아닌 감성 영역에 존재한다.
감성이 건강할 때는 이성의 명령을 잘 따른다, 그러나 감성이 이성의 과도한 조정에 지쳐 슬프고 화나게 되면 더 이상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화난 감성은 아무리 강력한 의지를 가진 이성이라도 이길 수 없다. 날씬해지고 싶어 안달이 난 이성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게 만드는' 감성의 복수를 우린 경험한다.
부모의 잔소리는 자녀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다. 자녀를 나인 것처럼 사랑하기에 자녀의 자아와 부모의 자아의 융합이 일어난다, 아이의 걱정을 그대로 느끼고, 그것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통제적인 권유를 하는 것이 부모의 잔소리다. 문제는 잔소리의 심리적 비효율성이다. 오락하지 말라는 잔소리가 더 오락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뇌의 신경생물학적 반응이다. 잔소리는 감성 소통의 커뮤니케이션을 막고 자녀의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뇌의 중독 경향을 키우기 때문이다.
시험 때 게임 하는 자녀도 생각이 없지 않다. 표현에 능하지 않을 뿐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철학적 고민으로 가득한 것이 우리 청소년들이다. 부모들 생각 이상으로 자녀들은 스스로에게 잔소리를 충분히 하고 있다, 부모의 잔소리까지 얹으면 두 배의 감성 스트레스를 자녀들은 받게 되는 것이다.
중독되지 않는 감성 자극이 있으니 그것은'진심이 담긴 위로'이다. 위로는 잔소리가 아닌 경청에서 시작된다. SNS등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우리를 복잡하게 엮어는 놓았으나 막상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이 없는 게 우리의 슬픔이다. 잠시 여유를 갖고 자녀, 배우자의 감성 고백에 귀 기울여 보자. "빨리 속 이야기 해봐"는 금물이다. 진정한 위로의 커뮤니케이션은 최소 1년의 느린 기다림이 있을 때 숙성되는 거니까.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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