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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할머니, 가게 세 못내 쫓겨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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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할머니, 가게 세 못내 쫓겨날 판

입력
2012.10.3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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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처먹고… " 할머니- 손님 줄어 매일 적자지만 "MB 탓 아냐" 원망 안 해가락시장 '목도리 할머니'-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단칸방 월세도 버거워TV 찬조연설한 '청년백수'- 비정규직 전전하다가 "일자리 찾겠다" 집나가

"할머니! 밀린 20개월치 월세 내지 않으면 내년에는 가게를 비워 주셔야 해요."

31일 오전 1시쯤 서울 청담동의 한 실내 포장마차. 손님들의 술잔 부딪히는 소리를 뚫고 한 사내가 외쳤다. 가장 붐빌 시간인데도 66㎡(20평) 남짓한 이 술집에는 테이블 14개 중 하나에만 손님이 있었다. 우두커니 TV화면을 쳐다보던 주인장은 불쑥 찾아온 건물주의 월세 독촉에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뭣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몰라…."

이곳은 'MB의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세를 탔던 강종순(72)씨의 실내 포장마차다. 강씨는 2007년 대선 때 TV광고에 출연해 국밥을 먹는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에게 "쌈박질 그만 해라 이놈아, 국밥 푹푹 퍼 처먹고 경제 살려"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당시 "서민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던 그의 처지는 5년이 지난 지금도 녹록지 않다.

강씨와 더불어 이 대통령의 '서민 살리기' 행보의 상징이 됐던 인물이 두 명 더 있다. 2008년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찾은 이 대통령이 매고 있던 목도리를 둘러줘 '목도리 할머니'로 불린 박부자(77)씨, 지난 대선에서 후보 방송연설에 찬조연설자로 나섰던 '청년백수' 이영민(30)씨다. 이 대통령의 임기가 넉달 남짓 남은 이 시점에 'MB의 대표 서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욕쟁이 할머니의 얼굴 주름에는 밀린 월세와 줄어드는 손님, 이 대통령에 대한 애착이 한 데 섞여 있는 듯했다. 하루 매상이 30만원은 돼야 적자를 면한다는데 '28일 14만원', '27일 4만원'이라고 적힌 가계부는 생활고를 말해주고 있었다. 12년째 한 자리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강씨는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직후에는 '연예인 대기실'이라 불렸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임기가 차면 찰수록 포장마차는 점점 비어 갔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와 강씨의 벌이가 비례했던 듯하다. 강씨는 "단골이었던 한 유명한 야구선수와 가족들이 이 대통령과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더니 자꾸만 벽에서 떼내라고 하는 바람에 대판 싸운 적도 있다. 그 뒤로는 오지 않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강씨는 월세가 밀려 내쫓길 지경에 이른 자기 처지를 이 대통령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전 세계 경제가 다 안 좋은데, 대통령이 못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강씨도 "대통령이 쓴 책 를 보면, 돈 없이도 꿋꿋하게 살던 모습이 나오거든. 그 점이 참 좋았는데"라며 대통령 가족과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 의혹에 휘말린 데 실망한 눈치였다.

이날 새벽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만난 '목도리 할머니' 박부자씨. 12년 전부터 매일 밤 9시에서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시장 한켠에 좌판을 놓고 시래기를 팔아온 박씨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매일 배추 경매가 끝날 즈음 상인들로부터 남은 시래기를 싸게 얻어 좌판에서 팔고 있는 박씨가 하루 버는 돈은 3만원 남짓. 기초생활수급비 30여만원을 더해도 보증금 500만원짜리 단칸방의 월세 20만원을 내기가 버겁다. 두 달 전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고도 이를 악물고 매일 새벽바람을 맞으며 좌판을 펴야 하는 이유다.

박씨는 "시래기가 팔리려면 작은 식당들이 잘 돼야 하는데 경기가 어려우니 한 단에 8,000원 하는 시래기도 그나마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우리 시장을 찾아 나를 안아주면서 토닥일 때는 재래시장도 붐비게 해주고 나 같은 좌판 상인도 형편이 나아지게 해줄 줄 알았는데…"라며 찬 바람에 옷깃을 여몄다.

5년 전 대선 후보 방송연설에서 청년백수와 비정규직의 설움을 토로했던 이영민씨 역시 여전히 지독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2007년 지방의 한 전문대를 졸업했던 이씨는 그간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지금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 가족에 따르면 그는 집을 나가 가족과 연락을 끊고 고향 부산 인근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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