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범인 사형으로 고통 끝난 것 아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범인 사형으로 고통 끝난 것 아니다"

입력
2012.10.31 13:48
0 0

10월 30일 오후 10시 1분 미국 사우스다코다주 수폴스의 주립 교도소. 사형수 도널드 묄러(60)의 몸에 독극물 주사가 주입됐다. 주사를 맞은 묄러는 가쁜 숨을 여덟 번 몰아 쉬더니, 이내 정신을 잃었다. 그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고, 피부는 중독 때문에 시퍼렇게 변해 갔다. 검시관이 사망선고를 내린 시각은 10시 24분이었다.

형장 밖에서는 한 여성이 이 23분간의 단말마를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묄러가 죽어가는 장면을 한 순간이라도 놓칠세라, 형장 쪽으로 난 통유리에 바짝 붙어 집행 장면을 지켜봤다. 이 여성은 묄러가 죽인 소녀의 어머니 티나 컬(50). 딸을 잃은 그 날 이후, 어머니가 22년간 그토록 맞이하길 바랐던 인과응보의 순간이었다.

AP통신 등 미국 언론은 이날 사우스다코다주 당국이 1990년 9세 소녀 베키 오코넬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묄러의 사형을 집행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묄러는 편의점에 설탕을 사러 간 베키를 납치해 성폭행했고, 베키를 살해한 뒤 시신을 배수로에 유기했다.

살인범 묄러의 죽음은 2007년 이후 단 한 차례만 사형을 집행했던 사우스다코다주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기도 했지만, 희생된 소녀의 어머니가 사형 장면을 직접 참관한다는 점 때문에 미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딸이 죽은 뒤 사우스다코다를 등졌던 컬은 이 날을 위해 뉴욕에서 사우스다코다까지 2,250㎞를 육로로 이동했다. 없는 살림에 교통ㆍ숙박비를 댈 돈이 없어, 성금을 받아 이동 비용을 마련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범인의 죽음을 지켜보고자 했던 이유는 단죄의 순간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지만, 범인으로부터 딸의 마지막 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한마디라도 듣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컬은 이 답을 듣기 위해 교도소에 수감된 묄러에게 수 차례 편지를 보냈지만, 묄러는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 당일까지 묄러는 소녀 어머니의 바람에 부응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묄러가 마지막 남긴 발언은 사과의 말도, 베키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사형 집행 직전 그는 형장 밖에 대기 중인 베키의 유족을 보고 “저 사람들은 내 팬클럽인가?”라고 물었을 뿐이었다.

드디어 일생일대의 숙제를 끝낸 어머니 컬은 사형장 밖으로 나와 “묄러의 죽음으로 마음에 위안이 되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고통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딸이 죽음을 당한 사우스다코다 땅을 다시는 밟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