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읊는 시를 한 행 한 행 따라 해보세요. 머리가 맑아지면서 옛 기억이 떠오르나요?"
미국의 '시 창작 프로젝트'(APP) 설립자 겸 대표인 개리 글래즈너(55)씨는 시를 통한 치매 치유를 주창하고 있는 시인이다. 시 창작 교육으로 치매 환자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치매 전문 요양원이나 국가 교육기관에 전파하는 게 그의 주된 역할이다. 2004년 설립된 APP는 미국의 23개 주를 포함해 독일 폴란드 등의 100여 개 시설에서 선보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31일부터 이틀간 여는 해외전문가 워크숍에 초청된 그는 이날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치매 환자들이 어떻게 시를 짓고 낭송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도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과 소통하기를 원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글래즈너씨는 직접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한 구절 한 구절을 따라 읽게 했다. "이런 과정을 15~20분 정도 숨을 쉬면서 낭송 하면 산소가 뇌로 공급됩니다. 뇌가 조깅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죠."
'워밍업'이 끝나면 환자들과 손을 잡고 시를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시 창작에 들어간다. 가령 '사랑'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물었을 때 환자들이 연상 단어들을 대고, 그러면 글래즈너씨가 단어들을 엮어 시를 완성하는 식이다.
"한 소절씩 함께 읽어가다 보면 노래화 되어 자연스레 환자들과 흥겨운 시간이 돼요. 이것이 일종의 '부르기와 응답하기 기술'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환자들은 자신이 던진 말이 시가 된다는 것에 존중 받고 소통하고 있다고 느끼는 겁니다." 이는 치매 환자의 과거나 추억들을 끄집어 내어 가족들과 소통하는 계기도 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성과도 제법 컸다고 했다. 말기 치매 진단을 받아 언어와 기억을 잃어가는 아일랜드 출신의 한 남성 환자가 딸과 함께 그를 찾았다. 글래즈너씨는 그에게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시를 읽어줬고, 관심 없는 듯 쳐다보던 그가 고개를 들어 시를 따라 읊었다는 것이다. "딸이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였어요. 가족 간 소통의 단초가 되기도 했음은 물론이고요."
그는 치매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한국도 환자와 가족, 사회 간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처럼 한국도 열린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이 고통을 나누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야 합니다. 치매 환자에 대해 쉬쉬하는 건 후진국 모습이에요."
그러면서 자신의 시 창작 프로젝트가 한국에서도 치매 치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잊지 않았다. "시는 소외되고 고립됐다고 느낀 치매 환자치료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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