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광팬으로
日여성 "새 작품 보고 싶었다"
두세달에 한번씩 설레는 방한
음악프로 촬영장 온 싱가포르 여성
"동방신기 무대 환상적" 글썽
팬행사 참석 7000명 몰려오기도
외국인 관객 증가… 미비점은
K팝댄스 강습 등 인기 불구
공연정보 외국어 사이트 부족
예매 단계서 회원 가입도 어려워
한류가 진화하고 있다. 드라마, K팝 등 한류의 첨병들은 아시아를 넘어 중남미 유럽 미주 중동 아프리카 등 지구촌 구석구석을 파고들고 있다. 싸이의 등장으로 한류의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그 범위도 넓어졌다. 한류의 흐름을 타고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관광시장을 점검하고, 해외 현장을 달구고 있는 새로워진 한류의 위상과 실태를 조망하려 한다.
"역시 가창력은 압도적이네요. 그런데 1부에서 베르테르의 술집 대화 장면은 이해가 잘 안 돼요. 자막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스즈키 노리코(鈴木倫子ㆍ51)는 지난달 25일 도쿄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귀국 날짜는 26일. 1박 2일의 짤막한 여행에서 스즈키씨가 한 일은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본 게 사실상 다였다. 25일은 개막 공연이었다. 뮤지컬 팬들은 완성도 있는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개막 공연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는 "주연인 김다현이 올해 '라카지'에서 보여줬던 연기와 노래가 인상적이었다"면서 "그의 새 작품을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경기 고양시 장항동 MBC '쇼! 음악중심' 촬영장에도 12명의 외국인들이 있었다. 7개국에서 온 이들은 한국관광공사의 버즈 코리아(www.ibuzzkorea.com) 사이트를 통해 활발히 한국 관련 콘텐츠를 퍼뜨리고 있는 블로거들이다. 저마다 내로라하는 K팝의 '광팬'들. 싱가포르에서 온 엘리자베스 얀친 토(23)는 "가인과 동방신기의 무대가 너무 환상적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부터 몇 차례 K팝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을 다녀갔다고 했다.
지난 6월 김재중 박유천 김준수로 이뤄진 3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 'JYJ'가 서울에서 갖는 팬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인 7,000여명이 3박4일 일정으로 한꺼번에 서울을 찾기도 했다. 소속사 씨제스 측은 "일본 팬들을 위해 서울 인천 수원 등에 3,500여 개의 호텔 방을 예약하고 250대의 버스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인천한류관광콘서트, 10월 한류드림 콘서트 등에도 각각 6,000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참여했다.
자신의 나라에서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소비하러 한국으로 직접 찾아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뮤지컬이나 K팝 공연장에 가 보면 한국어가 서툰 팬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순전히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 여행을 계획한 이들일 수도 있고, 모처럼의 한국 여행길에 평소 관심 있었던 공연장을 찾은 이들인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든 이제 공연 제작자들은 작품을 만들 때 외국인 관객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팬들의 태도는 예상보다 적극적이다. 스즈키는 2008년 우연히 처음 한국에서 뮤지컬을 봤다. 조승우가 출연한 '지킬 앤 하이드'였다. "나이든 배우가 중심인 일본 뮤지컬과 달리 젊은 배우들의 역동성이 매력적"이라는 게 그가 한국 뮤지컬에 빠져든 이유. 이후 두세 달에 한 번 꼴로 한국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고 간다. 처음엔 조승우 홍광호 김무열 등 배우를 좇아 작품을 골랐지만, 이젠 작품이 기대되면 잘 모르는 배우가 출연하더라도 빼놓지 않는다. 평균 방문 기간은 2박 3일, 한 번 오면 4, 5편씩 뮤지컬을 보고 간다. 쓰고 가는 비용은 10만엔 정도. 대부분 공연에 자막이 없기 때문에 "충분히 예습을 하고 온다"고 했다.
뮤지컬에 비해 'K팝 관광'은 아직 시작 단계다. K팝을 즐기는 연령대가 비교적 낮은 데다가 K팝 스타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에서 공연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행 상품이 개발되는 등 시장이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ENT전문댄스스튜디오 대표 신혜진씨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2시간 동안 K팝 댄스를 배워보는 프로그램을 판매하고 있다"며 "특히 실제 아이돌 그룹 지망생들과 함께 연습하는 코스가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국인이 한국에서 공연을 보는 것이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정보가 부족하다. 공연정보를 외국어로 안내하는 사이트는 인터파크 글로벌(ticket.interpark.com/global)과 비지트서울(www.visitseoul.net)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모든 공연 정보가 게재돼 있지도 않다. 설사 한국어를 안다고 해도 예매 단계에서 주민등록번호나 한국에서 발급된 신용카드 정보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막히는 경우가 많다. 엘리자베스 얀친 토는 "외국인은 회원 가입도 아예 안 돼 한국의 팬클럽에 부탁해 공연 티켓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다른 것을 제외하고 이 부분만이라도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일보ㆍ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
유상호기자 shy@hk.co.kr
김정은 인턴기자 (숙명여대 정보방송학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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