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밤 개최된 대종상영화제에서 '광해'가 15개 부문 상을 휩쓸면서 뒷말들이 무성하다. "심사위원들이 객관적으로 평가한 결과인데 무슨 문제냐"는 항변이 있지만 아무래도 곱지 않은 시선들이 많다. " '광해'의 15관왕은 '벤허' '아바타'도 못 이룬 역사적인 기록"이라는 비아냥부터 "심사제도에 문제가 있다"지적까지 다양했다.
'광해'의 15개 부문 수상은 국내 영화계에선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였던 '타이타닉'과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11개 부문)을 뛰어넘는 기록이다. 대종상 시상식 내내 "광해입니다" "또 광해군요" "오늘은 광해의 날이군요" 등 같은 영화만 언급하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MC와 출연자 모두 민망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광해' 제작자인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시상식장에서 "오늘 너무 기쁜데 많은 영화 동료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다. 이렇게 많은 상을 받을지 몰랐는데 죄송하단 말씀 드리고 싶다"라는 수상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올 한해 한국영화는 '신르네상스'란 말을 들을 정도로 호황이었다. 1,000만 이상 영화가 2편이나 탄생했고 다양한 주제를 지닌 400만 이상의 중박 영화들도 여러 편 나왔다.
피에타를 투자배급한 NEW의 박준경 마케팅팀장은 "올해는 각기 다른 소재의 많은 영화가 함께 성공했던 의미 있었던 한 해였다. 한국영화계의 다양성 구축을 축하해줘야 하는 첫 시상식의 자리에 이런 결과가 나타나 아쉽다. 시상식에서 김기덕 감독이 밝은 모습으로 있다가 특별상 수상도 대리인에게 맡긴 채 중간에 아무 말 남기지 않고 떠났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고 전했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영화인이 주축인 시상식이 이런 모습을 보여 안타깝다"고 말을 아꼈다.
대종상영화제는 그간 끊임없는 공정성 논란에 시달려왔다. 그래서 올해 꺼내 든 것이 '절대평가'란 카드다. 200여 명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된 50명의 일반심사위원단이 15명의 전문심사위원들과 함께 영화 심사에 나섰다. 이들은 한 곳에 모여 각 출품 영화를 본 뒤 점수를 매겨 제출했다. 영화제 사무국은 그 평가를 은행 대여금고에 봉인해 놓았다가 시상식날 오후에 꺼내와 합산, 수상작들을 발표했다. 대종상영화제 조근우 총괄본부장은 "제대로 하기 위해 처음 도입한 절대평가가 이런 결과를 초래할 지 전혀 몰랐다. 우리도 황당했다"고 설명했다
'광해'의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도 웃을 수만 없다. CJ측 관계자는 "기대치 않은 수상 결과에 놀랍고 감사하지만 우리도 당혹스럽다"고 전했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웃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만 대종상 시상식.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영화제가 결국 씁쓸한 블랙코미디로 끝나고 말았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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