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샌디가 올라오면서 잠시 휴전했던 미국 대선의 두 후보가 서로 다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31일 플로리다주로 이동, 선거운동을 재개하지만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허리케인은 끝나지 않았다”며 뉴저지주 재해 현장을 찾는다. 유권자들이 유세장의 롬니와, 참사 현장의 오바마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일주일을 남겨 놓고 혼전 중인 선거에서 두 후보의 선택은 정치적 모험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속이 더 타는 쪽은 롬니다. 샌디로 인해 29, 30일 5개 경합주의 유세 일정을 취소한 사이 오바마는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을 과시했다. 30일에도 롬니가 오하이오의 샌디 피해 위로행사에서 구호품을 나눠주는 사이 오바마는 백악관 지하상황실에서 각료와 군 관계자를 모아놓고 전시작전회의라도 하듯 대책회의를 열었다.
언론이 오바마의 행보에 초점을 맞추자 롬니는 31일 플로리다, 11월 1일 버지니아 등 핵심 경합주를 찾아 유세를 재개키로 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가 반정치(anti-politics)의 정치학으로 표현한 유세전 중단이 더 이상은 불리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그러나 롬니에게 샌디는 여전히 힘든 도전이다. 롬니는 유세를 재개함으로써 민주당 우세지역인 샌디 피해지역을 포기했지만 여론은 샌디 문제에 집중하는 오바마를 계속 주시할 수밖에 없다. 롬니는 유세를 해도, 선거 현장을 떠나 있는 오바마를 강하게 비난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되면, 샌디 관련 대책을 주도한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폐지하겠다고 한 롬니의 공약도 논란이 되고 있다. 롬니는 이날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을 14회나 받고도 답변을 거부할 만큼 곤혹스러워했다.
오바마는 29일 유세를 전격 포기하고 돌아온 ‘플로리다 회군’ 이후 현직 대통령의 특권인 ‘로즈가든’ 전략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후보가 아닌 대통령다운 역할을 강조하는 이 전략은 대통령의 지도력과 권위를 유권자에게 분명히 보여주면서 상대 후보를 왜소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특히 공화당 차기 주자인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와 함께 31일 재해 현장을 찾는 장면은 유세보다 더 유권자 표심을 자극할 정치 이벤트로 평가된다.
오바마는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인기가 더 높은 대리인을 통해 유세를 지속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핵심 경합주인 플로리다, 오하이오 등을 돌며 오바마를 돕고 있는 것이다. CBS는 구호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샌디가 오바마에게 정치적 선물이 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치전문지 내셔널저널은 “오바마가 잘못 대처하면 샌디는 판을 깨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뉴욕타임스와 CBS 공동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48%, 롬니 47%로 지지율에서 오바마가 앞섰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와 abc 공동조사에서는 롬니 49%, 오바마 48%로 나왔고 NPR 조사에서는 롬니 48%, 오바마 47%로 롬니가 우위였다. 하지만 오바마는 12개 경합주에서 50%를 얻어 롬니의 46%에 비해 선거인단 확보에서 여전히 유리한 상황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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