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高)신용자마저 대부업체의 고리(高利) 대출에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등급이 높더라도 자영업자처럼 소득이 일정치 않으면 은행들이 신용대출을 꺼리는 탓인데, 자영업자의 빚 부담은 임금근로자 가구보다 배 이상 무거워 부실 위험이 심각하다. 신용도가 낮은 가계에만 집중된 서민전용 대출상품의 허점이 드러난 셈이다.
31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등록대부업체의 신용등급 1~6등급(7등급 이하는 저신용)에 대한 대출 비중(신규취급 기준)은 10명 중 4명꼴(41.9%)이었다. 해마다 큰 폭의 증가세(2010년 32.2%→2011년 34.6%)다. 특히 각종 서민금융 지원대상에서 빠지는 1~5등급 비율도 올 들어 13%에 달했다.
대부업체들은 신용등급이 양호한 고객에게서도 고금리를 챙겼다. 19개 대형 대부업체의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38.5%로 법정 최고금리(39%)에 육박했다. 당장 급전이 필요한데 은행에서 퇴짜를 맞은 절박한 처지를 이자놀이에 악용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말 기준 대부업체 이용자 10명 중 3명(29.4%)은 저축은행에서도 빚을 낸 다중채무자였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 대출자의 대부업체 이용 비중(34.1%)도 4년 만에 12%포인트 남짓 증가했다.
결국 신용등급이 좋더라도 대부업체 이용과 다중채무로 얽히면서 등급이 떨어지고 금융회사에서 돈을 꾸기가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반면 대부업체들은 최근 4년간 대출잔액 112.2%(8조7,000억원), 이용자 수는 182.4%(252만명)나 늘렸다. 대부업체의 가계대출 증가율(15~28%대)은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8% 이내)을 압도했다.
높은 신용등급도 경기 침체 앞에선 무력했다. 시중은행들은 소득이 줄거나 들쭉날쭉해지면 대출을 안 해주는데, 아무래도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창업 경쟁과 내수 부진으로 소득 여건이 악화한 자영업자들이 해당되기 십상이다. 실제 위기 때 임금근로자의 소득은 소폭 증가(2.1%)한 반면 자영업자의 소득은 큰 폭으로 감소(-4.7%)했다.
자영업자들의 빚 구조를 살펴보면 가계부채 폭탄 중 가장 휘발성 강한 뇌관임을 알 수 있다. 자영업자의 부채는 올해 3월 기준 43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최근 1년 새 16.9%나 치솟은 것으로, 같은 기간 전체 가계부채 증가율(8.9%)의 배 수준이다.
자영업자들은 사업체 운영자금과 생활자금 등 돈이 이중으로 들어가다 보니 채무 관련 수치 역시 임금근로자의 두 배였다. 예컨대 가구당 부채(9,500만원 대 4,600만원), 가처분소득대비 부채 비율(219% 대 126%), 연 소득대비 원리금상환액이 40%를 넘는 과다채무가구 비중(14.8% 대 8.5%) 등이다.
그만큼 자영업자 부채의 부실 위험은 커지고 있다. 3월 기준 자영업자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1.1%로 임금근로자(0.6%)보다 높을 뿐 아니라 상승 속도도 가파르다. 특히 연 소득 3,000만원 이상인 중ㆍ고소득층 자영업자의 채무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한은은 새희망홀씨론, 햇살론, 바꿔드림론 등 저신용ㆍ저소득 취약계층 위주로 설계된 서민금융 지원대책의 보완을 주문했다. 신용등급 제한을 폐지해 '신용등급은 높으나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방안은 일자리 창출 등 소득여건 개선이다. 한은은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사회적 기업을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집값 하락과 전셋값 상승에 따른 위험도 여전했다. 3월 기준 만기연장 때 실제 상환해야 할 원금 규모는 3년에 걸쳐 2조원 정도지만 주택가격이 20%가량 떨어지면 11조원으로 불어났다. 수도권 아파트 기준 매매가격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최근 55%까지 높아져 집주인의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보증금에 대한 상환부담도 커졌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