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가 정치 무대에 등장한지 꼭 1년이 됐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씨에게 후보를 양보하면서 일약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당시 안철수가 선거를 불과 50일 남겨둔 오늘까지 건재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지율 고공행진은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현상으로 치부했다. 기껏해야 늘 있어왔던 제3의 후보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봤다. 대선에 나오니 마니 할 때도 결국 포기하겠지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출마를 선언한 후에는 "맷집이 약해 검증이 시작되면 금방 나가떨어질 것"이라고 코웃음 쳤다. 하지만 이런 예측, 저런 전망 모두 빗나갔다. 지지율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이 1년 동안 거의 그대로다.
식지 않는 지지의 바탕에는 사회의 변화를 기대하는 국민의 열망이 깔려있다. 상당수 국민들은 안철수가 그러한 역할을 해줄 적합한 인물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에서"구름 위에 손오공"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하며 깎아내려도 그 믿음은 여전하다. "출마는 제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던 안철수의 변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안철수의 지지기반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샅바 싸움이 치열한 정치혁신 논쟁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극대화된 상황임은 분명하다. 국민들은 누가 나를 대변하고, 어느 정당이 나의 이익을 지켜주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특권 의식에만 사로잡힌 직업적인 정치꾼들로 비치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의원 수를 줄이고, 중앙당을 폐지하고, 세비와 정당보조금을 줄여 복지재원으로 돌리자는 안철수의 정치 혁신안은 나름대로 공감을 받을 만한 내용이다.
물론 기존 정당정치의 시각에서 본다면 안철수의 개혁안은 국민들의 불만을 표로 연결시키기 위한 포퓰리즘에 가까울 수 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 70%가 찬성한다고 한 반면 전문가와 정치인들의 평가가 인색한 것을 보면 그런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반(反)정치, 탈(脫)정치를 부추기는, 정치 현실을 모르는 아마츄어리즘으로 폄하하고 몰아붙이는 것은 무책임하다. 안철수의 개혁안에는 기존 정당정치의 프레임을 뛰어넘으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 내용 하나하나의 현실성에 집착하기 보다는 정치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게 옳다.
정치혁신은 이번 선거의 출발점이 낡은 정치 타파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였던 점을 고려할 때 더욱 치열하게 논쟁해야 할 사안이다. 경제민주화도 복지국가도 일자리도 정치의 근본적인 혁신이 전제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주장하는 '책임 있는 정치'가 맞는 방향인지, 아니면 안철수의 '새로운 정치'가 옳은지 논의를 거듭해야 한다.
이런 논의를 거쳐 자연히 단일화의 접점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도 단일화의 전제로 정치권의 쇄신을 거론한 바 있어 공통분모로 삼을 만하다. 단일화에 급급해 여론조사나 선거인단 경선 같은 방법론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런 정치공학만 앞세우다가는 역풍 맞기 십상이다. 권력을 서로 차지하려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며 단일화를 하는 순간 집토끼도 산토끼도 다 떠날 수 있다. 단일화는 이미 상수(常數)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리라 믿고 있다. 증시 격언에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라는 말이 있듯 단일화 그 자체는 지지율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래서 +α가 필요하다. 단일화를 왜 해야 하는지, 단일화를 할 경우 정치는 어떻게 달라지고,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지를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고 납득시켜야 한다. 두 후보가 가치와 공약을 공유하기까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문철수'가 되든 '안재인'으로 결판나든 그때까지 두 사람은 미래를 말해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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