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내전·장기적출 회사 참혹한 현실 넘나들며 공리주의·존재론 모순 질문"2년 동안 12번이나 개작 내 능력보다 잘 쓴 소설"
"사실 이 소설은 제 능력보다 잘 썼다고 생각해서 독자들이 많이 읽어주셨으면 했는데, 아쉬웠죠."
장편 를 쓴 작가 임성순 씨는 후보작에 오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처음 쓴 장편로 재작년 제 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그는 투고 후 2년 간 12번에 걸쳐 이 작품을 다듬어 올해 7월 출간했다. 소설 속 장기 적출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작가는 응급실 의료진을 인터뷰하고 의학 논문을 읽고,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수술 장면을 수십 번 돌려보면서 공부했다. 아프리카 학살 장면을 쓰기 위해, 르완다 내전에 관한 각종 신문, 영상자료를 찾아보았다. 초고 2,000매 중 10분의 1인 200매만 완성본에 들어갔다. 이렇게 준비한 작품을 작가는 "관념소설"이라고 소개했다. 황당한 유머 같지만, 그의 전작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이 소설은 에 이은 작가의 '회사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윤리와 생명의 딜레마를 다룬다. 주인공은 의사 최범준과 신부 박현석. 임씨는 두 인물을 "고결한 공리주의자와 세속적 존재론자"라고 부른다.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극단으로 추구해 자살 희망자들의 장기를 떼어내 이식이 필요한 환자에게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최범준이 공리주의자의 전형이라면, 움직이지 않는 절대적인 가치와 윤리를 믿기 때문에 신도의 고해성사 내용을 발설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는 박현석은 존재론자의 전형이다.
두 사람은 내전과 학살이 벌어진 르완다에서 처음 조우한 바 있다. 부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현장에서 각각 의료봉사와 선교사로 왔던 둘은 자신의 의술과 신앙이 내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로부터 15년 후. 최범준은 불법 '회사'를 운영하고, 박현석은 장기 적출 대상자로 수술대에 누워있다. 소설은 현석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장기 적출을 기다리는 상황을 일찌감치 제시한 후, 이들의 내력을 번갈아 제시하며 오늘날 비참하고 참혹한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윤리적 딜레마를 독자에게 되묻는다.
처음 쓴 장편으로 데뷔한 작가는 "시나리오로 습작했다"고 말했다. 소설가가 되기 전 그의 직업은 영화 조연출가. 대학시절 우연히 곽경택 감독의 수업을 듣고(당시 영화 '친구'가 개봉했던 시기라 임씨는 이 영화의 흥행과 이후 학생들의 변화를 몇 달에 걸쳐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곽 감독의 영화 사단에 들어가 연출을 배웠다. 2004년 안권태 감독의 영화 '우리형' 조연출을 하며 입봉작을 준비하던 찰나, 영화 산업에 회의를 느껴 소설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내력이 소설에서 십분 발휘된다. 묵직한 윤리적 딜레마를 추리소설 코드로 버무린 작가는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