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엑스포개최로 유명해진 전남 여수시가 시청 말단 기능직 공무원 한 명 때문에 '비리 도시'라는 오명을 덮어쓰게 됐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이 29일 국고손실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로 구속 기소한 여수시청 회계과 직원 김모(46ㆍ지방 8급)씨가 3년여 동안 급여 등 공금 76억 원을 빼돌리는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는데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년 전 오현섭 전 시장과 시의원들의 무더기 뇌물수수사건에 이어 횡령사건까지 터지자 시민들은 "공무원들이 여수를'비리도시'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가 공금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7월. 2년 전 부인 김모(40ㆍ구속)씨가 사채 8억원을 끌어다 돈놀이를 하다 수십억 원의 빚더미에 올라앉자 여수시 발행 상품권 환급액과 급여, 근로소득세 등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회계과로 전입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3년 3개월 동안 소득세 납부 및 급여 지급과정 등에서 관련 서류를 위조하거나 허위작성, 첨부서류 바꿔치기 등의 수법으로 ▦급여 40억여원 ▦ 상품권 환급액 28억8,700여만원 ▦소득세ㆍ주민세 6억6,500여만원 등 공금 76억원을 횡령했다. 김씨는 주위사람 명의의 차명계좌 11개로 횡령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 많은 돈 다 어디로 갔나
무려 76억 원을 횡령한 김씨는 현재 외관상 무일푼이다. 김씨와 구속된 아내 명의 통장은 물론 차명계좌에도 현재 잔고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연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사용했을까. 검찰의 자금 추적 결과, 친인척 부동산ㆍ차량 구입 및 생활비로 32억원, 사채 채무변제 31억원, 지방행정공제회로부터 빌린 대출금 상환 7억4,000만원, 지인 차명계좌로 이체 3억 9,000만원, 기타 1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검찰이 복원한 김씨의 휴대전화 기록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지인들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가 넘쳐났다. 횡령금 일부는 장인과 처형, 처남 명의의 아파트(1억8,000만~2억4,000만원 상당) 4채와 베라크루즈 등 차량 3대를 구입하는 데 사용됐다. 검찰은 김씨 소유의 아파트 1채와 횡령금이 들어간 친인척 명의 부동산에 대해 여수시로 하여금 가압류를 신청하도록 했다. 그러나 가압류 신청된 재산 이상의 돈을 환수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 부부 명의와 11개 차명계좌에는 잔고가 거의 없다"며 "그러나 은닉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 부분은 물론 공범 여부 등에 대해서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상 천외한 공금횡령 수법
김씨가 가짜 공문서를 만들어 돈을 빼돌리는 동안 여수시는 눈 뜬 장님이었다. 급여 지급과 상품권 원천징수세액 납부 과정 등에서 가짜 서류로 결재를 올렸지만 누구도 꼼꼼히 챙겨보지 않았다. 급여 업무를 맡았던 김씨는 급여관리프로그램상에서 자신의 급여를 억대로 입력해 직원 전체의 급여 총액을 부풀린 총괄표와 정상급여가 표시된 직원별 급여 내역서를 지출결의서와 함께 상급자에게 올려 결재를 받았다. 김씨는 결재 후 자신의 급여에서 증액된 부분을 소득세 등으로 환급한다며 공문서 목록에도 없는 급여 공제내역서를 작성, 시금고에 제출해 공제금액을 차명계좌로 빼돌렸다. 특히 김씨 외에는 급여관리프로그램 접속 권한이 없어 상급자는 김씨가 올린 결재서류에 도장만 찍었다. 세도(稅盜)를 막기 위해 만든 전산프로그램이 세도의 보호막으로 사용된 셈이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감사원 공직감찰정보단이 여수시의 원천징수세액 납부과정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하고 지난 8일 감사에 착수해 김씨의 공금 횡령 사실을 밝혀냈다. 김씨는 부인과 함께 동반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뒤 검찰에 검거됐다.
여수=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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