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투기성 국제 거래자금에 세금을 물리는 토빈세 도입 방안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재 '외국 투기자본의 놀이터' '세계의 현금인출기(ATM)'처지가 된 우리 금융시장의 안정성 유지를 명분으로 정치권이 꺼낸 카드다. 하지만 정부는 "자칫 건전한 장기투자자본마저 위축시킬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전문가들의 입장은 토빈세로 단기 투기자본으로부터 우리경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쪽과 급격한 외국 투자의 감소와 대외 신인도 하락이라는 위험성이 크다는 입장으로 양분되는 모습이다. 그런 만큼 논란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현재 토빈세 도입은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측 박광온 대변인은 29일 "새누리당이 토빈세를 박근혜 후보의 선거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데 적극 환영한다"며 "투기자본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토빈세는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도 이날 "평시에는 저율인 0.02%를 부과하고, 환율 변동폭이 전날 대비 3%를 초과하는 위기 상황에는 30%의 세금을 부과하는 2단계 토빈세를 이번 주에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새누리당은 해외자본의 급격한 유ㆍ출입을 막기 위해 토빈세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은 이날도 라디오 방송 출연 "토빈세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공론화를 시도했다. 새누리당이 토빈세 도입을 대선공약으로 확정할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나, 유력 대선후보들이 모두 토빈세 도입을 강조하고 있어 새 정권이 들어서면 관련 입법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이 토빈세 도입을 적극 검토하는 것은 선진국의 양적 완화 조치 등으로 넘쳐나는 전세계 단기 자본들이 경제가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대외개방도가 높은 우리나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유입 외국 자금이 7,500억달러(외채 포함)에 달하는 가운데 단기 투기성 자금이 가세할 경우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에 대비한 우리 금융 및 자본시장의 방어장치는 미흡한 게 현실이다.
민병두 의원은 "1997년과 2008년에 극심한 외환변동성을 경험한 적이 있다"며 "현재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선물환포지션 한도규제 ▦외환건전성 부담금 도입 등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갖추고 있으나, 최근 채권시장에 800억달러의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원화가치가 치솟는 등 한계를 노출했다"고 토빈세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 정부에서도 토빈세 도입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투자자본 규제를 위해 도입을 추진했다가 국가 신인도 하락이 더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내부 반대에 밀려 뜻을 접었다. 이 같은 정부 기조는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현재 우리 상황에서 토빈세가 꼭 필요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정치권의 도입 움직임은 자칫 건전한 외국자본까지 적대시하는 국수주의적 접근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토빈세를 도입할 경우 세수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외국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간다면 거둘 세금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토빈세 도입은 세계적 공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에서 프랑스, 독일 등 10개국이 금융거래세(FTT) 도입에 찬성하고 외환거래세로 6%를 부과하는 브라질 등 광의의 토빈세를 적용하는 나라가 속속 늘어나고 있다.
학계도 찬반의견이 팽팽하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파생상품, 외환거래 등 순전히 자본거래만을 위해 들어오는 자금에 대해서는 국제적 공조를 통해 세금을 거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반면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개방경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가 틀을 급속히 바꾸는 게 맞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다른 나라의 선택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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