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P(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는 우리 정부가 지난 반세기 경제발전의 경험을 후진국에게 전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후진국 정부가 원하는 특정 프로젝트에 관해 자문을 하기도 하고 또 전형적 발전모듈을 만들어서 후진국 정부에 이를 전달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는 과거 행정부의 경제관료로서 경제계획이나 정책의 수립과 집행 경험이 있는 이들이나 경제개발을 연구하는 KDI 경제학자들이 후진국 현지의 관료들과 경제발전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우리 국민의 힘으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니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성원 속에서 가능하였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우리가 받은 혜택을 돌려준다는 의미도 있고 우리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적극적, 자발적으로 기여한다는 의미도 있다. KSP에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우리의 정치발전과 기업가정신, 법치주의에 관한 논의도 포함했으면 한다.
정치는 언제나 지역적이다. 따라서 한국의 지난 반세기 정치발전경험이 후진국의 경제발전과 유의미한 관련성이 있는지는 사실 의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4ㆍ19, 5ㆍ16, 10ㆍ26, 12ㆍ12, 5ㆍ18, 6ㆍ29 등 민주정치로 가는 길에 수없이 많은 격동의 파도를 겪어 왔다. 경제의 발전에 비해 정치의 발전은 아직도 멀고도 먼 길을 앞으로 가야만 할 것이다. 정치가들 사이에 정치개혁에 관한 끝없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니 우리 현재 정치상황이 결코 이상에 가깝지는 않다.
그렇지만 KSP는 우리의 과거 경제발전이 훌륭한 성과 뿐 아니라 하나의 선례가 된다는 의미에 기초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발전모델의 문제점인 정치적 비용도 KSP의 중요한 구성부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후진국이 단기간 내에 효과적인 경제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함에 관한 지식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치러야 할 정치적 비용도 고려하라고 알려줘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고려를 포함한 경제개발이 후진국의 입장에서 중장기적으로 보다 효과적인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능률과 효과에 수반하는 정치적 비용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던 자들을 KSP에 참가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경제발전은 기업의 성장에 기초한다. 우리의 경제발전이 사명감에 기초한 헌신적 경제관료조직에 기초한 것은 사실이다. 이들이 주도적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경제정책을 이끌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지만, 경제관료가 전부는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업가들이 있었고 이들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결정을 하며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세계의 시장을 두드리고 다닌 모험정신도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KSP에 경제계획의 수립과 집행뿐만 아니라 기업가정신의 진작을 위한 프로그램, 그리고 우리 경제발전의 선두가 됐던 기업가들의 철학과 지도자정신에 대한 소개가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법이다. 경제개발도 계획과 집행에만 의존하였던 것은 아니며 이들 계획의 중요한 일부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행동의 지침으로 의존할 수 있었던 법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경제정책 역시 사회를 움직이기 위한 법제도의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특정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법제, 특정산업이 사양산업화하면서 이를 구조조정하기 위한 법제, 외국자본과 기술의 유치를 위한 법제, 적정한 시점에서의 대외개방을 위한 법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이들 법을 모든 이들이 지키며 분쟁이 발생한 경우 법에 따라서 해결하기 위한 법치주의 교육과 신뢰를 받는 사법제도의 확립 역시 경제발전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법제가 공무원이나 정치가, 기업가들의 부정부패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해 오늘도 여전히 누가 이들을 조사하고 처벌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나라가 부정·부패의 방지를 위해 어떠한 입법과 집행정책이 있었으며 어떠한 점에서 보완이 필요한지도 중요한 선례적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구체적 입법례에 대한 연구와 지원이 KSP의 중요한 일부여야만 할 것이다.
정영철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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