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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0월 30일] 네팔에서 만난 부끄러운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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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0월 30일] 네팔에서 만난 부끄러운 한국

입력
2012.10.2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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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한국 시민단체의 네팔 의료봉사에 동행 취재를 갔다가 네팔노총 GEFONT를 방문했다. GEFONT는 35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네팔 최대 노총으로, 한국의 민주노총 같은 단체다. 예정에 없던 방문을 하게 된 것은 거기서 만난 네팔인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고용허가제(EPS)에 문제가 많아서 네팔 노동자들이 고초를 겪고 있으니, 네팔에 온 김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다.

7일 오후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GEFONT 사무실에서 그들이 들려준 것은 부끄러운 한국, 원망스런 한국이다. 남편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바상 셰르파(26)와 샨티 라마(26)는 한국에서 취업하려고 2010년 한국어능력시험을 봐서 합격했으나 2년이 다 되도록 못 가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한 외국인 노동자를 받게 돼 있다. 2011년 이 시험을 친 네팔인 5만 7,764명 중 합격자 1만 5,000명이 선발됐지만, 상당수가 이들처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로 인해 피해가 많다고 했다. 한국에 가려고 직장을 관뒀거나 취업을 포기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특이 여성들은 대부분 합격하고도 못 가서 이들 여성 피해자들이 단체를 만들어 지난 8월 카트만두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농성 시위를 했다. 한국어능력시험의 유효기간은 2년이다. 그 안에 한국에 못 가면 다시 시험을 쳐야 하는데, 한국어 배우는 데 드는 돈이 큰 부담이다. 보통 학원에서 3개월 코스로 공부하는 데 학원비가 월 5,000루피(6만원),네팔 노동자들 월급이 10만~15만원임을 감안하면 큰 돈이다. 학원이 카트만두에 몰려있기 때문에 먼 지방 사람들은 카트만두에 와서 지내는 데 또 돈이 든다.

한국에서 일하다 지난달 자살한 네팔 이주노동자 바둘 고다메(25)의 자살 이유 중 하나도 한국행을 준비하면서 진 빚이다. 한국인 고용주의 착취와 학대를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 노동자는 이미 여럿이다. GEFONT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04년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한국에서 일하다 자살한 네팔 노동자는 20명쯤 된다"며 "네팔인들이 돈 벌러 나가는 100여개국 중 최악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네팔인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국내에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매년 40만명이 노동시장에 나오지만 일자리는 2만개에 불과해 이주노동을 택한다. 그렇게 외국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가 300만명이나 돼 이들의 노동 인권 문제는 GEFONT의 주요 관심사라고 한다.

GEFONT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최근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크게 제한한 조치를 강하게 비난했다. 8월부터 시행 중인 고용노동부의 새 방침은 직장을 옮기려는 이주노동자에게 구인업체 정보를 주는 것을 중단했다. 대신 구인업체에게만 이주노동자 정보를 주고 노동부 고용센터가 엄체와 노동자를 중개한다. 예전에는 사업장 변경 조건과 회수가 제한돼있긴 해도 직접 구직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업체에서 연락 오기만 기다려야 한다. 고용센터가 소개한 업체를 합리적 이유 없이 거절하면 2주간 알선을 안 해준다. 그렇게 3개월 간 취직을 못하면 강제추방이다. GEFONT는 "이주노동자의 직장 선택권을 박탈하는 노예노동제"라고 비난했다.

28일 서울 민주노총에서는 노동부의 이 지침에 반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대회가 있었다. '이주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가 행사 슬로건이었다. 새 지침에 따른 이직 기한 3개월이 거의 끝남에 따라 피해를 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이 자리에서 증언을 했디. 강제추방을 면하기 위해 원하는 직장이 아니어도 취업할 수밖에 없거나 여태 새 직장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이 많은 실정이다.

네팔인들이 말하는 한국의 그늘을 듣는 심정은 무거웠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더욱 무거울 것이다.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다가 시신으로 돌아가는 네팔 노동자 이야기는 특히 참담하고 부끄러웠다.

오미환 문화부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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