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의 낙인 효과를 소설 에 빗대 설명한 것은 꽤 성공적인 시도였다. 글의 서두를 장식하는 이 하나의 비유로 학생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기교적으로도 자연스럽고 도입부의 문제의식이 비교적 일관성 있게 이어지는 점도 평가받을 만하다. 예상되는 반론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 재반박을 펼치는 것도 훌륭하다. 하나의 독립적인 글로 본다면 여러 가지 장점이 눈에 띄는 글이다.
하지만 선행 텍스트와의 연관성 측면에서는 약간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이 참고로 삼고 있는 한국일보 기사를 잘 살펴보면 학교폭력 가해사실 학생부 기재의 위헌 논란을 몇 가지 쟁점으로 나눠서 분석적으로 다루고 있다. 구체적인 쟁점들은 기본권 침해, 법률유보원칙 위배, 과잉금지원칙 위배 등이다. 학생이 주목하는 '낙인효과'는 이 중 과잉금지원칙 위배에만,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해당할 뿐이다. 나머지 두 쟁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생략되어 있다.
더구나 학생이 추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학생부 기재의 실효성이나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는 위헌 논란과 전혀 관련이 없다. 물론 이 민감한 이슈가 단순히 법률적 차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교육현실 전반에 관련된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신문활용교육의 취지에 맞게 조금 더 기사 내용에 충실한 편이 나았을 것이다. 즉 나머지 두 쟁점을 빠트리지 않고 충실히 다루면서 교과부 방침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학생이 동원하는 논리가 기사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의 글이 더 생생하게 우리의 직관에 호소하고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논리적 측면만 놓고 보면 선행 텍스트인 기사 내용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다루고 있는 쟁점이 축소되어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또 학생의 글은 비판에 집중하느라 대안 제시에는 다소 소홀하다. 학생은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 입시교육 위주의 교육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경쟁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옳은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은 당연히 매우 장기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헌법소원 심판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조금 더 현실적인 대안을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학생의 바람대로 위헌 판결이 난다면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지만 합헌으로 결론이 난다면 제도의 악폐를 보완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학생부에 기재하더라도 그 보존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인다든가, 심리 치료나 상담으로 학생이 변하는 모습을 보이면 기록을 삭제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를 둘러싼 논쟁을 뚜렷한 이유 없이 '소모적인 자존심' 싸움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자의 교육 철학이 달라서 생기는 대립을 양비론으로 깎아 내리는 것은 무책임해 보일 수 있고 앞서의 자신의 논지까지도 훼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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