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적 의도나 작가에 대한 평판, 문단 계파 등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문학적 성취만을 기준으로 삼아 '작가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문학상'으로 꼽히는 제45회 한국일보문학상이 최근 예심을 열어 본심 후보작으로 장ㆍ단편 7작품을 뽑았다.
장편으로는 권여선의 , 김사과의 , 임성순의 , 한강의 , 단편으로 김이설의 '미끼', 이장욱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 조현의 '그 순간 너와 나는'이다. 후보작가 7명의 인터뷰를 연재한다. 최종 수상자는 본심을 거쳐 11월 중순 발표할 예정이다.
김이설(37)의 목소리는 아름다움을 피해 달아나려는 듯 불편한 삶의 일면에만 천착해 온 작가라고는 믿기지 않게 밝았다. 뭔가에 홀린 듯 최악의 답을 선택해가는 답답한 인생들의 불행을 그저 무심하게 펼쳐놓은 그의 소설은 피가 튀기는 잔인함이나 비루한 인생의 매정함 사이에 자리한다. 때문에 문단에서는 그를 극한의 궁핍, 폭력, 가족살해, 광기로 발현되는 '21세기 신경향파' 선두주자로 꼽기도 한다.
죄의식이나 수치심을 배우지 못한 서울역 노숙자 소녀의 입을 빌어 삶의 절망을 천진하게 이야기하는 등단 작 '열세 살'부터 친모에게 버림받고 고속도로에서 만난 트럭 운전사를 아빠라 부르며 그의 아이를 낳는 소녀('순애보'), 빚 때문에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살며 대리모로 생계를 꾸리는 여대생('엄마들'), 매춘을 해 가정을 꾸려가는 여자() 등 그가 택한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핍진한 삶을 살아간다. 모두가 눈 감고 싶어하는 현실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남다른 주제의식은 '자음과 모음' 지난해 겨울호에 실린 단편 '미끼'에서 정점으로 치닫는다.
낚시터가 배경인 '미끼'는 여자를 납치해 창고에 묶어 두고 때려서 길들이는 아버지와 그걸 그대로 배운 아들 이야기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강자와 약자의 대립으로 그리면서 없는 자에게 대물림 되는 폭력을 그려 냈다. 김씨는 "그 동안 보여준 소설들의 정점 같은, 더 이상 비슷한 작품을 쓸 수 없도록 여한 없이 쏟아 부었다"고 말했다.
"읽는 사람이 불편해 하고 왜 불편한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개운하지 못하고 웃을 수 없는 상황을 반추할 수 있도록요." 소설가를 지망했지만 10년 넘게 등단도 못하고 버티던 "루저" 생활이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필명을 이설(異說)로 정한 것은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것들을 쓰겠다는,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2006년 등단 이후 그의 작품은 그래서 문학적인 기교보다 삶에 대한 직설적인 묘사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결혼하면서 남편을 따라 청주에 정착한 작가는 여덟 살, 다섯 살 딸을 키우는 엄마 작가다. 둘째를 낳고 사흘 뒤부터 쓰던 소설 마무리 작업을 시작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그런 성실함으로 2009년부터 일년에 한 권씩 작품집을 내고 있다. 그는 "소설 쓰기를 게을리하거나 작가라는 직업을 만만하게 보지 않겠다"며 앞으로도 "촌스럽고 우직하게 쓰겠다"고 말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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