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에도 대선 테마주가 있다. 철저히 정책 이슈에 따라 형성되는 게 특징이다. 예컨대 에너지 기업 중에서도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은 친환경 정책을 중시하는 오바마 테마주로, 석유 등 전통적인 화석연료 에너지 기업은 롬니 테마주로 분류된다.
반면 18대 대선을 맞아 형성된 국내 주식시장의 대선 테마주는 대부분 후보와의 학연과 지연 등 인맥에만 의존하고 있다. 후보간 정책 차별성에 근거한 미국의 테마주는 물론, 5년 전 17대 대선 테마주보다도 후퇴했다는 평가다. 여전히 '누가 되면 밀어줄 것'이라는 막연하고 후진적인 인식 수준과 후보 간 공약 차별성 실종이 배경으로 꼽힌다.
2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형성된 대선 테마주의 90% 이상은 이른바 학연, 지연, 인연 등으로 얽힌 이른바 '인맥' 관련 종목들이다. 박근혜 후보의 보육정책(아가방컴퍼니 등), 안철수 후보의 대륙철도 구상(세명전기 등)에 힘입은 정책 테마주가 잠시 반짝하기도 했지만 갈수록 인맥주에 밀려 힘을 잃고 있다.
그나마 후보와의 인연조차 '억지성'이 대부분이다. 의료기기업체 위노바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이상호 우리들의료재단 이사장의 아들이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라는 이유로 문재인 테마주로 엮였다. 가죽 제조업체 유니켐은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보유한 패션 브랜드 MCM에 소재를 공급한다는 이유로 박근혜 테마주로 묶였고, 써니전자 역시 송태종 부사장이 안랩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안철수 테마주로 분류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향에 대해 유난히 연고주의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권력형 비리사건들이 대부분 유력인사와의 인맥에서 비롯됐다는 '학습효과' 덕분에, 투자자들이 특정 후보가 당선되면 정경유착을 통해 해당 종목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후보들 간 정책 차별성이 뚜렷하지 않은 점도 인맥 관련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는 배경으로 지적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선 주자들이 한결같이 경제민주화 같은 거대담론만 추상적으로 되뇌고 있어 후보 별로 차별화한 정책 테마주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대선 후보들의 10대 핵심 공약을 보면, 3인 모두 경제민주화, 일자리 창출을 전면에 배치했고, 세부적인 공약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17대 대선 당시 여야의 4대강 살리기와 남북경제협력 공약이 나름의 정책 테마주를 형성했던 것보다도 테마주의 수준이 퇴보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광재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최근 각 후보의 공약은 정책 아이디어 수준에 불과하다"며 "정책 추진 시기와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외국과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정책 테마주의 투자 위험성이 높은 상황"이라 경고했다.
반면 다음달 6일 대선을 앞둔 미국의 테마주는 대개 '정책'을 연결고리로 삼는다. 의료시설 운영업체 HCA홀딩스와 테닛헬스케어는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 중인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건강보험 미가입자 3,000만명이 시장에 나올 것으로 기대되면서 대표적인 오바마 수혜주로 꼽히고 있다. 석탄 공급업체 아크콜과 피바디에너지는 롬니가 석유ㆍ석탄 등 에너지산업의 규제 완화로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약하면서 롬니 테마주로 분류됐다. 안 교수는 "미국은 정당마다 바꿀 수 없는 원칙이 존재하고 후보들마다 공약도 달라 차별적인 정책 관련 테마주들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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