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제시한 외교안보 분야 정책 설문에 대한 주요 대선 후보들의 답변을 보면 보수와 진보를 정면으로 가를 수 있는 분야인데도 다른 후보와의 차별화보다는 쟁점화 방지를 통한 중도층 흡수 전략을 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미국∙중국과의 균형 외교, 동북아 신뢰 구축, 평화 정착을 통한 통일 방안 등에서 커다란 이견이 발견되지 않는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정책의 중점이 한반도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코리아, 세계로 향하던 외교안보의 눈을 한반도로 되돌리고 있다. 세계에서 한반도로의 회귀 현상이다. 또 모든 후보가 남북 대화를 통한 국면 타개, 인도적 지원의 지속, 평화 정착을 통한 통일 기반 마련 등을 희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남북 대화가 부족하고 충돌이 계속된 데 대한 반성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상호주의와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단계적인 통일을 지향한다. 평화 정착-경제 통일-정치 통일로 나아가는 3단계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굽히지도 않으면서 신뢰를 쌓아가며 통일 기반을 닦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10∙4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한반도 평화 구상에 바탕을 두고 남북경제연합을 병행하려 한다는 점에서 조속한 평화 회복과 경제연합을 통한 통일 기반의 조성을 지향한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남북관계, 평화 체제, 북핵 해결을 병행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 정착과 북방 국가들과의 협력 및 비군사 영역 협력을 통한 우회적 평화 정착을 추구한다.
그러나 세 후보는 외교안보 정책 방향성을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단계적 실현 목표를 발표했을 뿐이다. 어떻게, 얼마나 재원을 투입해서 언제까지 목표를 이루겠다는 구체적 실현 방안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개별 정책 사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또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정책 중에서 무엇을 계승하고 수정할 것인지에 대해 항목별로 간결하게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울러 외교안보를 보는 눈이 한반도에 매몰되지 않도록 동아시아 지역과 글로벌 질서 변화에 대응하는 대전략을 제시해 주었으면 한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격 강화와 더불어 외교안보 역량이 증대되고 있다. 하지만 후보들의 공약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면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적거나 쟁점화를 꺼리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교안보가 사치스런 부속품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와 번영, 그리고 대외의존적 경제의 미래가 달린 사활적 영역임을 다시 한번 자각해 주길 촉구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일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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