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계 영국인 사드 알힐리 가족이 지난달 프랑스의 알프스 휴양지에서 괴한들 총격을 받고 사망한 '알프스 살인사건'이 이라크 전 대통령 사담 후세인의 은닉 재산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중간 수사 결과가 나왔다. 후세인 정권 붕괴 당시 그가 세계 도처에 남긴 은닉 재산 중 일부를 보관하던 알힐리 가족이 재산을 가로채려다 살해됐다는 것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26일 입수해 보도한 프랑스 경찰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후세인은 2003년 사드 알힐리의 아버지인 카드힘 알힐리 명의로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82만파운드(15억원)를 보관했다. 이 돈은 후세인이 2006년 전범재판 과정에서 사형되고 아버지마저 지난해 세상을 떠나면서 주인 없는 돈이 됐다. 경찰은 이 사실을 안 알힐리가 돈에 접근하려 하자 돈의 존재를 알고 있던 과거 후세인 측근 세력 등이 그의 가족을 제거했다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후세인은 현 이라크 집권당인 바트당 소속으로 1979년 대통령에 취임해 2003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24년간 독재정권을 유지했다. 그는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그 동안 모은 재산 6억2,000만파운드(1조1,000억원)를 이라크 중앙은행을 통해 스위스와 프랑스 등 전세계에 은닉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힘이 바트당 간부로 활동하다 1970년대 말 영국으로 건너온 만큼 스위스 계좌도 후세인의 은닉재산 중 일부라는 게 경찰의 해석이다.
그러나 바트당이 자신들에게 반기를 든 카드힘을 '후세인 은닉재산 수혜자 명단'에서 삭제했음에도 알힐리가 돈에 욕심을 부렸고, 결국 가족과 함께 제거됐다는 것이다.
프랑스 경찰은 "비밀계좌는 알프스 살인사건을 조사 중이던 이달 초 발견했다"며"이라크의 자금흐름을 추적해오던 독일 연방정보국(BND)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재산이 매우 충분한 상황에서 알힐리가 목숨을 걸고 돈에 욕심부렸을 가능성은 적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그 동안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사건 당시 정황도 상세히 전했다. 괴한들은 지난달 5일 미리 알힐리 가족이 지나갈 프랑스 동남부 안시 호수 인근 슈발린시 숲길에 장애물을 설치했다. 이후 괴한들은 매복해 있다 장애물을 치우기 위해 차에서 내린 알힐리와 7살 첫째 딸에게 먼저 총기를 발사했다. 또 자전거를 타고 우연히 이 곳을 지나다 현장을 보게 된 40대 프랑스 남자를 총기살해 한 후 알힐리 가족이 타고 있던 차에 가 그의 부인과 장모에게도 총기를 난사했다. 첫째 딸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고, 4살 둘째 딸 총격 당시 차에 있던 엄마가 치마 품 속에 숨겨 화를 면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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