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이 판타지에 빠졌다. 현대에 살던 의사가 고려시대로 가서 수술을 하고(SBS '신의') 남편과 아내의 영혼이 바뀐다(KBS '울랄라부부'). 최근 종영한 MBC '아랑사또전'까지 합치면 평일(월~목) 드라마 6편 중 3편이 판타지를 접목시키다 보니 판타지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상황이 이 정도면 KBS 드라마 '해신'이 한창 인기를 끌 무렵 초등학생에게 장보고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최수종'이라고 했다는 것처럼 '신의'의 주인공 최영 장군의 업적이 '세계 최초의 시간여행'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신의'는 2012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성형외과 학회장에서 강연하던 의사 유은수(김희선)가 '하늘문'을 통해 온 최영(이민호)에 이끌려 고려시대로 간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공민왕, 최영, 덕성부원군 등 실존 인물에 무협지적 상상력을 동원해 다소 생소하기는 하지만 '역사상상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했다.
'아랑사또전'은 대표적인 판타지물이다. 주인공 김은오(이준기)는 귀신을 보는 능력이 있고, 처녀귀신 아랑(신민아)은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에게 "내가 죽은 이유를 알기 전에는 저승에 갈 수 없다"고 따진 덕분에 석 달의 시간을 얻어 이승으로 돌아온다. 저승은 어떤 곳인지,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러 잡귀들은 어떤 성격인지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느라 제작진은 방송 전 2회에 걸쳐 스페셜편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런 스페셜 방송은 판타지 드라마 '태왕사신기' 이후 5년 만이었다.
'울랄라부부'는 판타지 종합세트다. 남편 고수남(신현준)과 아내 나여옥(김정은)의 영혼이 바뀐다는 것부터 수남이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여옥 옆에 또 다른 여옥이 나타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 끊임 없이 수남과 여옥을 다시 결합시키기 위해 따라다니는 월하노인(사람들의 혼인을 관리하는 신)까지 대부분의 설정이 판타지다.
판타지가 왜 이토록 판을 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사극, 멜로, 추리극 등 기존 장르에 판타지를 입혀 차별성을 두려는 시도로 분석했다. 또 판타지를 통해 불가능한 일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의 답답함을 해소하려는 시청자들의 욕구와도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판타지라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신의'의 경우 사극의 진지한 무게감과 판타지가 갖는 코믹적인 요소가 이야기 속에 녹아 들지 못하고 겉돌면서 사극, 코믹, 멜로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울랄라부부'는 남편과 아내의 영혼이 바뀌는 판타지를 통해 부부간 소통이라는 난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 이 드라마를 보는 남편과 아내들이 황당한 설정 속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판타지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드라마를 끌어가는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면 '신의'처럼 사극이 갖는 장르의 힘까지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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