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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10월 27일] 대통령의 아들딸

입력
2012.10.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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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가 엊그제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을 수사 중인 특별검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특검에 소환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현장에는 무려 380여명이나 되는 취재진이 몰렸고 TV는 그 광경을 생중계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어째 국민들은 무덤덤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으레 있는 일인데 뭘, 정도의 반응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한국 대통령의 아들딸이 검찰에 불려가거나 구속된 것이 한두 번이라야지, 지난 20여년 동안 그들의 비리가 드러나고 그들의 아버지가 사과하는 장면을 되풀이해서 봐온 국민들은 이미 면역이 생긴 모양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5명의 대통령 자녀가 모두 아버지의 임기 중 또는 퇴임 후에 검찰이나 특검의 수사를 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는 남편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1993년 미국 은행에 20만 달러를 밀반입해 예치했다가 미국 법원에 의해 전액 몰수당했는데, 처음에는 결혼축의금이라고 둘러댔다가 나중에 아버지의 비자금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져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처벌되지는 않았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들들의 비리로 대국민 사과를 하던 모습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평생을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노정객들은 자식들의 비리 앞에서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는 일체의 사회활동을 중단하는 등 근신토록 하고 제 가까이에 두지 않음으로써 다시는 국민에게 근심을 끼쳐드리는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1997년 2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기업인들로부터 청탁과 함께 수십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차남 김현철씨를 두고 이렇게 국민 앞에 사과했다.

"저는 자식들이나 주변의 일로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국민 여러분 앞에 약속드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 평생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처럼 참담한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역시 청탁 대가로 기업인들로부터 수십억원을 받는 등 김홍일, 홍업, 홍걸씨 3명의 아들이 모두 검찰 수사를 받거나 구속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2년 6월 그야말로 참담한 대국민 성명을 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는 미국 뉴저지의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100만 달러를 불법 송금한 혐의로 지난 8월 검찰 조사를 받고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이들 전직 대통령의 아들딸과 이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의 경우 혐의에 큰 차이가 있다. 이시형씨는 현직 대통령인 아버지가 퇴임 후 거주할 사저 부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하고, 같은 부지를 매입한 청와대 경호처에 비해 싼 값으로 땅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나,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및 국고에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상 아버지 이 대통령과 연관된 문제다. 전직 대통령 자녀들의 비리가 개인 비리 내지 아버지 퇴임 후 드러난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현직 대통령이 얽혀 있는 것이다. 당초 내곡동 의혹을 수사했던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 '대통령 일가가 부담스러워 사건 관련자에 대해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된 것은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결국 의혹은 특검의 재수사로 이어졌지만, 특검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아무튼 5명 대통령의 아들딸들이 잇달아 수사를 받는 모습을 보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한국 정치문화가 권력비리라는 문제에서는 단 한 치도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목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에 유례가 있을까 싶다. 레임덕이니 하는 말도 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어느 외국처럼 그들이 철딱서니없는 스캔들이나 일으켜 파파라치에게 사진 찍히거나 황색신문에 얼굴 오르내리는 걸 보는 게 더 낫겠다. 그러면 국민들이 한 번 웃을 수라도 있지, 비리 앞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종오 부국장 겸 사회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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