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에서 질문한 노무현 정부의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2007년 10월 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하면 된다.
그러나 24일 국회정보위원회 회의에서 보듯이 야당의 거부로 앞으로도 국가정보원이 보관하고 있는 정상회담 대화록이 열람될 가능성은 적다고 보여진다. 대통령기록관 소장 대화록도 지정기록물이어서 목록조차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진실 규명을 위해 더 쉬운 길이 있는데, 그것은 노 전 대통령 자신이 한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설명이다. 2007년 10월11일 정당 및 원내대표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노 대통령 발언을 보도한 10월12일자 '소름끼치는 노무현의 NLL 영토 포기' 제목의 MBC 동영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더 자세한 설명으로는 2007년 11월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의장 자격으로 제51차 민주평통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한 90분 연설이 있다.
연설의 반 이상을 NLL에 할애한 그는 "협의해서 그은 것 아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영해선 획정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 주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1953년 8월30일 이후 NLL을 지키기 위해 장병들이 수고하고 희생해온 것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도 있다. 이것도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다. "실질적으로는 거의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문제를 놓고 괜히 어릴 적 땅따먹기 할 때 땅에 줄 그어놓고 니땅 내땅 그러는 것 같다"고 했다. NLL이 안보상의 실질적 문제가 아닌 정서적 문제라는 뜻으로 읽혀진다. '10·4 선언'제3항 하단 서해 공동어로구역 지정과 평화수역 조성 관련해서는 "합의되지 않은 NLL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고 하면서 "군사문제는 묻어놓고 경제적 문제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좋은 합의라고 자찬한다.
북한은 1959년 11월30일 '조선중앙연감'에서 NLL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했고, 73년 10월 처음 이의를 제기한 이후에도 92년 남북기본합의서 등 여러 계기에 경계선으로 인정해 준수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99년 9월2일 북방 한계선에서 훨씬 남하한 경계선을 발표한 데 이어 2000년 3월23일 서해5도 '통항수로'를 공포하고, 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 등 NLL을 무색케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이 바라는 대로 서해공동어로구역이 NLL 남쪽에 지정되면 NLL이 무력화된다. 어선을 위장한 북한 군함이 인천 앞 바다 가까이까지 진출하게 되어 서해 5도는 고립되고 수도 서울 서측 방어는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서해 5도 주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도 없고 국민의 여행도 제한된다.
지난 4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2007년 11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2차 국방장관회담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이 너무 경직된 자세를 보이는 바람에 서해 평화회담이 결렬되었다"고 비판했다. 이 회담에서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NLL을 지키려는 김 장관에게 "노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물어봐라"고 하였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민주평통 연설, 문 후보의 김장수 장관 비판, 국방장관회담에서의 북한 측의 발언 등 모두 노무현 정부의 NLL 포기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들이다. 문 후보 측은 23일 브리핑과 함께 배포한 자료에서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1월1일 민주평통 상임위원회 연설에서 'NLL 안 건드리고 왔습니다'라는 대국민 보고를 했다"고 하면서 'NLL 포기 발언' 주장은 허위라고 반박했다.
문 후보 측도 NLL 포기 발언이 허위라는 주장의 논거로 노 대통령의 같은 날 연설을 인용하고 있는 만큼 NLL 포기 여부에 대한 진실 규명은 쉬워졌다. 여·야 의원, 언론, 시민, 학생 등이 한 자리에서 같이 그 연설을 듣고 진실을 규명할 것을 여·야에 제의한다.
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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