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 브로니슬로 말리노프스키(1884~1942)는 1915~16년, 1917~18년 두 차례에 걸쳐 남태평양의 뉴기니 동쪽 트로브리안드 군도에서 집중적인 현지조사를 했다. 지금은 '키리위나'로 불리는, 죽은 산호로 이뤄진 섬들이다. 그는 한 번에 1년 이상, 그곳 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참여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민족지를 썼다. 선교사나 탐험가, 여행가, 정부 관리가 쓴 기록에 의존해 원시사회를 서술하던 '안락의자' 인류학을 넘어, 민족지 조사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것이다.
영국 사회인류학의 창시자인 말리노프스키가 쓴 인류학 고전 이 처음으로 한국에 번역 출간됐다. 트로브리안드의 농경문화를 서술한 민족지로,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경작법과 농경 의례에 관한 연구'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원서는 1939년 출간됐다.
트로브리안드에서 농사는 주술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파종에서 경작, 수확에 이르는 전 과정과 수확한 생산물을 보관하고 처리하는 모든 행위에 주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리노프스키는 경제적 활동인 경작과 종교적 믿음인 주술의 상호연관성에 주목해 트로브리안드 문화를 서술함으로써 인간과 환경, 문화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말리노프스키가 '내가 쓴, 혹은 앞으로 쓸 책 중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자부한 이 책은 민족지의 교과서다. 문화를 기능적으로 통합된 총체로 보는 기능주의적 시각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한 책이기도 하다. 토착민들의 삶과 문화, 그들의 숨결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강박에서 나온 지독하게 꼼꼼하고 생생한 기록이다. 서문에서 그는"트로브리안드인들의 기록자이자 대변인이 되려고 한다"고 썼다.
전체 7부 중 1~3부는 트로브리안드의 경작과 주술에 대한 기록이고, 4~7부는 그들의 농경언어를 정리한 언어학적 민족지다. 3부 끝에 붙인 부록은 이 책의 한계와 현지조사 중 저지른 실수까지 고백하는 여담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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