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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으로 불붙은 이집트 혁명… 집단지성이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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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으로 불붙은 이집트 혁명… 집단지성이 영웅이었다

입력
2012.10.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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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지금도 가능한가. 답은 '그렇다'이지만 그 형태는 유혈을 동반한 폭력과 전략전술이 불가결하던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21세기의 혁명은 페이스북 비밀번호 하나 때문에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타를 당하는 동안 나는, 두바이에 있는 내 친구 나지브가 제발 페이스북 계정의 비밀번호를 변경하도록 신께서 계시해 주기를 기도했다. 심문이 혹독해지면 내가 기어이 비밀번호를 불고 말 텐데, 그전에 나지브가 제발 그 비밀번호를 바꾸게 해달라고 기도했다.'(10쪽)

수십년 독재체제에도 꿈적 않던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권에 혁명의 바람을 불어 넣은 역사의 순간 순간을 기록한 책이 나왔다. 은 페이스북을 매개체로 성난 군중을 한데 모아 '아랍의 봄'을 이끈 소심한 컴퓨터광이자, 구글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마케팅 책임자인 와엘 고님(32)의 회고록이다. '2.0'은 과거 이집트 시민혁명과 다른 새로운 방식의 혁명을 의미한다.

2010년 6월 이집트 카이로 시내에서 스물여덟 무고한 한 시민 칼레드 사이드가 경찰의 폭행으로 숨진 사건을 우연히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접한 고님은 '우리는 칼레드 사이드'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분노한 이집트인들을 결집했다. 페이지를 만든 첫날 2만6,000명이 회원이 될 정도로 열기는 뜨거웠다. 미약한 개인의 분노로 시작한 이 싸움은 30년 철통독재 무바라크 정권의 몰락을 불렀고, 아랍 민주화 운동을 촉발했다. 이후 이라크, 쿠웨이트, 모리타니,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등지로 반정부 시위는 퍼져나갔다.

세계를 놀라게 한 대장정의 불씨가 된 고님은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1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1위에 올랐다. 그의 트위터 '이집트여,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1월25일'(2011년 2월 12일)은 지난해 900억개에 달하는 전세계 트위터 중의 '최고의 멘션' 1위를 차지했다. 1월 25일은 이집트에서 민주화 시위가 시작된 날이고, 2월 12일은 무바라크가 퇴진을 결정한 날이다.

다른 이집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고님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배우며 성장했다. 독재 정권에 적개심을 품었지만 그래서 겉으로 분노를 표출하지는 않았다. 그를 바꾼 것은 참혹하게 숨진 칼레드 사이드의 사진 한 장이었다. 이집트 정부는 칼레드 사이드의 군 기피 의혹이 나왔고 마약 중독자나 거래상이라는 이야기를 언론에 흘리며 사실을 날조, 왜곡했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이 같은 음모를 폭로하면서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분개한 고님이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다)'라는 페이지를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시점이다. 한 임신부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게재하고 '내 이름은 칼레드입니다. 나는 칼레드 사이드를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라는 캡션을 붙이기도 했다.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 극단 세력의 저항이 아닌 평범한 시민의 분개는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는 언제나 점잖고 온건하며, 정치적 투쟁성을 철저하게 배제한 모두가 공감할 만한 내용만을 올렸다. 고님은 어떤 정치인이나 종파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으며, 그저 정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 것이 더 큰 분노를 이끌어 냈다고 책에 적어 놓았다.

인터넷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것을 현실의 투쟁으로 옮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1차 침묵시위에는 8,000명 정도가 참가해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게릴라식 저항이 잇따랐다. 서구 언론들 역시 자살폭탄 테러 등이 등장하는 과격한 아랍권의 시위와 다른 행태에 주목했고, 이집트 정부 당국 역시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누구도 미처 알지 못했지만 여러 해 이어진 저항의 움직임은 '주전자에서 끓어 흘러 넘치기 직전의 물과도 같'이 차 올랐다.

고님은 신분이나 접속 위치 노출을 피하기 위해 '토르(TOR)'라는 프록시 프로그램을 사용해 끊임없이 IP 주소를 바꾸며 당국의 눈을 피했지만 결국 국가보안국에 끌려가 며칠간 고문과 심문을 당하다 풀려났고 영웅으로 떠올랐다.

혁명은 새로웠지만 단 번에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무바라크는 실권했어도 이집트의 정치 상황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다. 소용돌이 속에 군부는 다시 전면에 등장했고 이집트 청년들은 "이집트가 어디로 가고 있나. 우리는 혁명을 도둑맞았다. 혁명을 잃었다. 우린 속았다.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며 고함치고 있다.

'이집트 혁명은 보통 때는 위험을 회피하고 희생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일반 대중이라 하더라도 하나로 뭉치기만 하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용감해지고 또 기꺼이 자기를 희생할 만큼 활동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생생하게 증명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집단지성의 힘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책 앞부분의 장황한 성장 배경 설명이나 템포 느린 구성 등으로 다소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생생한 사건 묘사는 독자를 빨아들인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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