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서양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마법에 걸리기 쉬운 존재로 인식됐다. 유럽 종교사에서 특히 극적 변동의 시대였던 1600년에서 1650년 사이, 즉 종교개혁 직후를 배경으로 삼은 이 책은 당시 수녀원의 내밀한 일상을 엮어낸다. 모두 수녀들 자신이 기록한 것이라는 대전제 아래 엮어 놓은 사실은 마치 소설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정치나 경제 등 큰 틀로 과거를 구획 짓는 기존 역사 서술 방식과는 달리 이 책은 일상사에 내재된 소소한 사건들에 확대경을 들이대 살려내는 '미시사'의 전범을 달성해 낸다.
옛 스페인령 네덜란드 수녀원들의 기록보관소에서 여름을 꼬박 보낸 저자의 꼼꼼한 연구덕분에 종교 개혁과 마녀 사냥이라는 서양사 최대의 암흑기가 생명체처럼 살아 온다. 종교 개혁이라는 포괄적 용어 아래 자행된 잘못, 현명함, 모순 등 추상적 주제가 움직이는 등장 인물의 동선으로 재현된다. 이영호 옮김ㆍ책과함께ㆍ336쪽ㆍ1만7,000원
장병욱 선임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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