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구에서 개최된 제 93회 전국체전(전국체육대회)에서는 바둑 종목 경기도 함께 열렸다.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전국 16개 시도를 대표하는 310명의 선수가 출전해 15~16일 이틀간 지역의 명예를 걸고 격돌, 열띤 경쟁을 펼친 끝에 서울팀이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대회서 선수들이 거둔 성적은 각 시도의 성적 집계에 포함되지 못했다. 바둑이 전국체전 정식 종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둑은 2000년대에 들어와 한국기원이 중심이 돼 체육으로 전환을 추진, 2009년 대한바둑협회가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로 승인받았다. 자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어 2010년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남자단체전, 여자단체전, 남녀페어 등 바둑 종목에 걸린 금메달 3개를 싹쓸이해 한국이 4회 연속 종합 2위를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 바둑이 명실상부한 스포츠 종목임을 전세계에 확실히 인식시켰다.
그러나 일찍이 2003년부터 전국체전 전시 종목(후에 동호인 종목으로 명칭 변경)으로 채택됐지만 이후 10년 동안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올해도 역시 동호인 종목이었다. 매년 체전 기간 동안 각 시도 대표 선수들이 참가해 여느 정식종목 못지않은 규모로 성대하게 대회를 치르지만 그들만의 리그일뿐이었다. 바둑 종목에 금메달이 5개나 걸렸지만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각 시도 체육회에서도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바둑이 전국 체전에서 10년 세월의 '찬밥 신세'에서 벗어나 당당히 '제 식구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바둑협회는 24일 '바둑을 전국체육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해 달라'는 신청서를 대한체육회에 제출했다. 다음 달 전국체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내년 1월 대한체육회 이사회서 최종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바둑계에서는 그동안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정식 종목 채택에 필수적인 요건들을 대부분 충족시켰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전국 시도 체육회에 정가맹 단체로 가입한 시도 바둑협회가 부산ㆍ제주ㆍ경기ㆍ충북ㆍ인천ㆍ울산 등 6곳 밖에 되지 않았지만 올 초에 대구ㆍ광주ㆍ경남ㆍ강원 등 4개 시도 바둑협회가 해당 시도 체육회에 정가맹 단체로 승격, 정식 종목 지정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건을 구비했다. 또 지난 10년간 전국 체전에 전시 종목으로 참가해 선수 선발이나 관리, 대회 진행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하게 대회를 치러내 바둑이 분명히 체육종목의 하나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렸다. 바둑협회의 행정 능력도 확실히 보여줬음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매년 전국 규모 바둑대회가 100개 이상 개최되고 있어 수많은 동호인들이 대회에 참가해 왔던 터다.
바둑이 전국체전 정식 종목으로 되면 각 시도와 각급 학교에 바둑팀이 만들어져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바둑을 통한 진학의 길이 열리는 것은 물론 그동안 사교육 위주였던 바둑 교육의 중심축이 공교육 쪽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와 함께 체육회로부터 재정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돼 한국 바둑이 제 2의 중흥기를 맞을 것으로 바둑계는 기대하고 있다. 조건호 대한바둑협회 회장은 "동호인 수가 전국적으로 1,000만에 육박하고 한국의 체육 종목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강한 몇 종목 안에 드는 바둑이 전국체전 정식 종목이 못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지난 10년간 전국체전에서 전시종목 운영 경험을 통해 대회 수행 능력을 충분히 보였고 10개 시도 바둑협회의 체육회 정가맹 요건도 모두 충족했으므로 반드시 긍정적인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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