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6일 내놓은 ‘2012년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는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 국면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분기별 실질 GDP 성장률(전년 동기 1.6%)이 2% 아래로 내려간 것은 1980년 석유파동, 외환위기(1998년), 카드사태(2000년), 금융위기(2008년) 등 위기상황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건 과거와 달리 외부요인만으로 경제활력이 위축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성장률은 2010년 4분기 4.9%를 기록한 이후 매 분기 조금씩 줄어왔다. 이미 ‘L’자형 장기침체에 빠져 저성장 구조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경제가 더 이상 고도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는 신호”라고 밝혔고,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성장잠재력이 아예 꺾이는 것이 아닌지 고민할 시기”라고 말했다.
실제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수치는 한 가닥의 경제 회복 조짐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민간 소비는 유럽 재정위기가 부각된 지난해 4분기 1.1%를 기록한 이래 ▦올 1분기 1.6% ▦2분기 1.1% ▦3분기 1.5% 등 4개 분기 연속 1%대의 낮은 증가율에 머물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이 내놓은 10월 소비자동향지수(CSI) 역시 전월보다 1포인트 떨어진 98을 기록해 석 달째 ‘부정적’인 상태다. CSI가 100을 넘으면 경제상황을 바라보는 소비자 심리가 낙관적임을 뜻하지만, 반대로 100을 밑돌면 비관적으로 판단하는 의미다. 올해 1월 98이었던 CSI는 5월 105까지 올랐으나, 6월 101을 기록하며 5개월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투자심리도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투자 감소는 수출뿐만 아니라 생산, 고용 등 내수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쳐 향후 경제성장률 유지에 부담을 주는 요인인데, 올 3분기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6.0%나 줄었는데, 이는 2분기(-3.5%)에 이어 두 분기 연속 감소한 것이다. 설비 투자 증가율이 2개 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9년 3분기(-9.4%)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4분기부터 회복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과거처럼 빠른 회복세를 타기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세계 경제의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면 다소 나아질 수 있겠지만, 현재 여건상 수출, 소비, 설비투자가 타격을 입어 오랜 기간 불황이 계속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3분기를 저점으로 점차 나아지긴 하겠지만, 세계 경제 둔화에 따라 수출이 늘어나지 않고 가계부채로 내수가 회복될 가능성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예상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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