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바돌로뮤(67) 영국왕립아시아학회 이사. 아흔 아홉 칸짜리 사대부집 강원 강릉 선교장을 시작으로 43년간 한옥에서 거주하면서 보여준 한결 같은 한옥사랑으로 '원조 한옥지킴이'로 통하는 그가 정부가 수여하는 제31회 세종문화상 한국문화 부문 수상자로 25일 선정됐다.
문화, 학술, 예술, 봉사 등 4~6개 부문의 세종문화상은 한글창제 등 민족 문화 발전을 이룩한 세종대왕의 창조정신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1982년 제정됐다. 전 부문을 통틀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수상하기는 처음이다.
그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외국인으로서 이 상을 처음 받게 돼 영광"이라면서도 "이렇게 큰 상으로 다시 시선을 끌게 돼 부담스럽다"고 했다.
미국 출신인 그는 1969년 1월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강릉을 찾아 우연히 경험한 한옥이 좋아 지금껏 한옥에서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언론에도 많이 소개됐고 각종 강연, 세미나, 토론에 불려나가 주목 받았는데, 이번에 상까지 타게 됐다.
그가 한국에 일으킨 변화를 감안하면 과한 상은 아니라는 평가다. 75년부터 터 잡아 살고 있던 서울 동소문동 한옥마을을 재개발로부터 지켜낸 게 대표적이다. "노후 불량 건축물 비율이 60%이상(60.74%)이라면서 구청이 재개발을 추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확한 근거와 자료를 요구했더니 거절합디다.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고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함께 소송 했어요."소송 과정에서 구청이 재개발을 위해 서류를 조작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그의 완승으로 사태는 마무리 됐다. 3년 전 일이었다. 그는 "최근 한옥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격도 덩달아 올라 전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재개발에 반대하고 있다"며 "이 곳을 재개발한다는 소리는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부사장 직함으로 해양조선업 관련 컨설팅을 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한국인들은 옛 것을 지키는 것보다 버리는 것에 익숙하다"고 꼬집었다. "한국인들은 한국의 문화, 특히 한옥에 대해 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맨날 '한옥은 불편하다', '한옥은 돈이 많이 들어간다' 하죠."
아파트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건 사실 아니냐고 묻자 "돈을 주고 관리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차이"라며 "손이 가는 것은 한옥이나 연립주택, 아파트 모두 다 똑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한옥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 없는 주택이 될 것"이라고 '컨설팅'했다. 건축가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욕실과 화장실, 주방, 난방장치만 현대화 하면 한옥이 불편하다는 생각은 싹 사라집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자랑하는 한국의 건축가들이 왜 한옥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한편 정부는 이날 바돌로뮤씨 외에도 백제어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도수희 충남대 명예교수(학술), 첼로 신동 장한나(예술), 이주민 문화예술 센터 건립으로 문화다양성 증진에 힘쓴 마붑 알엄(문화다양성), 기부에 앞장서고 있는 가수 김장훈(국제협력ㆍ봉사) 등을 세종문화상 수상자로 선정해 29일 시상한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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