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보다 더 재미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 뭐냐 물으신다면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보다 토론이라고 말하겠어요" 라는 게 내 오랜 레퍼토리기도 하다. 어떤 사안 하나를 놓고 이른바 전문가라는 이들이 모여 앉아 이러니 저러니 의견을 피력하다 결국 핏대를 세우는 풍경, 왜 구경 중에 최고는 싸움 구경이 아니던가.
나는 도무지 말싸움을 할 줄 몰라 어릴 적부터 토론 문화라면 닭살을 긁고 물러나기 일쑤였다.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상대를 정의롭게 묵살하기에는 허무주의에 빠진 세월이 더 깊었기 때문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래 그냥 너 맞다고 하든가.
공부가 모자란 사람이란 것을 알아차리고 대학원을 때려친 것도 바로 그 지점의 나를 간파했던 탓이었다. 내가 쓴 논문의 한 구절이 문제 있네 없네 토론을 해보자는데 대뜸 거기다 대고 한다는 말이 너나 잘하세요, 였으니 말이다.
선거를 앞두고 각 채널마다 쟁점이 되는 주제를 놓고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큼지막한 주제의 어려움을 말로 쏟는다 하여 해결책이 나올까마는 공부 좀 했다는 전문가들 가운데 건강한 말의 문화를 선도하는 패널은 과연 없는 걸까, 익숙한 얼굴들이 빤한 소리나 우겨대는 가운데 탓할 것은 우리네 교육 과정의 문제 밖에 없을 듯하다. 의견 있는 사람 손 들고 얘기해봐, 라고 할 적마다 고개 푹 숙이고 딴짓하던 부끄러움 속 우리들. 왜들 하나같이 볼 빨개지던 아이들이었나 몰라.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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