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빙빙 돈다. 어지럽다. 갑자기 이런 증상을 겪으면 덜컥 겁부터 난다. 요즘 어디 특별히 아픈 데도 없는데 왜 이럴까, 모르는 사이 머릿속 어딘가가 고장 난 건 아닐까, 아니야, 하루 이틀 이러다 말겠지…. 오만 가지 생각이 스친다. 참다 못해 병원을 가려 해도 무슨 진료과로 가야 할지 헷갈린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이유는 실제로 다양하다. 머리나 귀, 혈압의 문제일 수도 있고, 두통이나 노화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어지러움을 느끼는 정도나 표현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워낙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를 짚어내는 게 쉽지는 않다. 어지럼증의 다양한 양상과 원인, 대처 방법 등을 전문의들에게 들었다.
어지럽다고 다 빈혈은 아냐
어지러움 하면 사람들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원인이 빈혈이다. 실제로 평소 혈압이 낮은 편이거나 생리 직후인 여성들은 앉았다 일어설 때 간혹 핑 도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렇듯 충분한 혈압이 유지되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면 머리가 무겁고 띵하게 된다. 심하면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부정맥을 의심해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시적인 증상이거나 약으로 조절된다.
어지러워서 병원을 찾는 환자의 80% 가까이는 귀에 원인이 있다. 귀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어지러움은 대개 공통적인 양상을 보인다.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구자원 교수는 "주변이 빙빙 돌면서 매스껍고 토하고 싶어진다. 자신은 똑바로 일어서려 하는데, 자꾸 비틀거리거나 넘어지게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특별한 병이 없는데 어지럼증을 호소하면 병원에선 보통 이 같은 양상이 나타나는지부터 확인한다.
이와 달리 순간적으로 눈 앞이 아찔하면서 다리에 힘이 빠져 후들거리며 쓰러질 것 같다가 잠깐 쉬면 다시 회복되는 증상은 빈혈이나 기립성저혈압 같은 혈압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기립성저혈압은 의지와 관계 없이 작동하는 몸의 각종 생리 현상을 조절하는 자율신경계의 기능이 떨어진 상태인 고령자에게 많이 나타난다. 자율신경계의 조절 기능이 원활하지 않아 혈압이 낮아지면서 누웠다 일어서는 등 자세를 바꿀 때 어지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귀나 혈압 문제가 아니면 어지럼증이 또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환자가 가만히 있을 때는 어지러움을 느끼지 않다가 일어나 걸으려고 할 때 비틀거리며 중심을 못 잡는 것이다. 구 교수는 "이런 경우 고령자라면 나이가 들어 신경계가 노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어지럼증일 수 있지만, 젊은 사람이라면 신경계나 뇌 관련 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병이 바로 뇌졸중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서 기분이 이상하고 붕 떠 있는 듯하고 가슴이 뛰는 등의 모호한 증상을 함께 호소하는 어지럼증은 심인성일 가능성이 크다. 스트레스를 비롯한 정신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얘기다. 구 교수는 "공황장애나 불안증 등을 겪는 환자들은 종종 가슴이 뛰면서 숨이 가빠진다"며 "이렇게 호흡이 과해지면 피 속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떨어지면서 팔다리가 저리고 어지러운 증상이 생긴다"고 말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욱신욱신 아프면서 어지러움을 느끼는 사람은 편두통이 원인일 수 있다. 뇌를 비롯한 감각계가 지나치게 예민해진 탓이다. 편두통이 생기면 뇌로 가는 혈관이 적당한 굵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수축과 이완을 계속하게 되는데, 이 때 균형 감각을 담당하는 혈관에까지 영향을 주면 어지럼증이 나타난다. 귀와 연결된 혈관에 문제가 생긴 경우엔 귀 질환 때문에 나타나는 어지럼증과 헷갈리기도 한다.
혹시, 꾀병 아냐?
노화나 특정 병 때문에 생기는 어지럼증은 완치보다는 보통 증상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조절해 준다. 하지만 어지럼증의 가장 흔한 원인인 귀 문제는 대부분 완치가 가능하다.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주요 귀 질환은 크게 이석증, 전정신경염, 메니에르병 등 3가지다.
셋 중 환자가 가장 많은 건 이석증이다. 귀 속에는 작은 칼슘 덩어리(이석)가 들어 있어 미세하게 흔들거리며 평형을 감지하는데, 머리에 충격을 받거나 스트레스나 노화 등으로 이석의 일부가 떨어져 나오면 귀 속을 돌아다니며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이는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이석을 원위치로 되돌리면 해결된다. 구 교수는 "떨어져 나온 이석이 귓속에서 움직일 때마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달라진다"며 "눈동자를 보고 이석의 위치를 추적하면서 머리를 움직이는 등의 물리 치료로 이석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정신경염은 말 그대로 귀 속에서 평형 기능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에 염증이 생긴 상태다. 감기를 앓고 난 뒤 걸리기 쉽다. 감기 바이러스가 귀에까지 침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 환자가 참기 힘들 정도로 어지럽고 매스꺼워 해 일단 약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한림대 평촌성심병원 이비인후과 홍성광 교수는 "증상이 심?3, 4일 정도가 지나 물리 치료를 하면 6~8주쯤에 점차 호전된다"고 말했다.
메니에르병은 간혹 꾀병으로도 오인 받는다. 빙빙 도는 것처럼 어지럽다가도 다음날 보면 멀쩡해지는 게 반복돼서다. 하지만 계속 방치하면 청력이 떨어질 수 있어 빨리 치료하는 게 좋다. 이석증과 전정신경염이 정확히 귀에 탈이 난 병이라면, 메니에르병은 귀뿐 아니라 온몸의 건강 상태와도 관련이 있다. 과로나 스트레스, 수면 부족, 짜게 먹는 습관 등이 이 병을 부르기 때문이다.
메니에르병의 가장 큰 특징은 공기의 진동(소리)를 청각 신경에 전달하는 귀 속 기관인 달팽이관에 물이 차 부으면서 압력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지럽고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홍 교수는 "높은 곳에 올라간 것처럼 귀가 꽉 막힌 듯하거나 울리는(이명) 느낌을 받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약을 먹어 달팽이관에 차 있는 물을 빼고 청력이 떨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치료한다. 약을 써도 계속 어지럽다면 귀에 직접 약을 주입하거나 수술로 압력을 낮춰주는 방법도 있다. 구 교수는 "간혹 종양이 달팽이관으로 가는 뇌신경(청신경)을 누를 때 메니에르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며 "뇌파 검사나 뇌 자기공명영상(MRI) 등으로 확인해 청신경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 볼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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