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로 사세요'란 말이 툭 튀어나와 당황했다. 날라리는 '일없이 그저 노는 데에만 열심인 사람을 뜻하는 속어'이니 제법 시청률이 높은 공중파 프로그램 강연에 나가 정리 멘트로 던질 말은 아닌데 아뿔싸, 이미 입을 떠나고 만 것이다. '심리 이론과 사례를 기반으로 품위 있게 강의하다 막판에 싸구려로 끝냈네'라 웃어 버린 뒤 잊고 있었다. 이후 한 유명 시사 잡지 기자가 팬이 되었다며 인터뷰를 하고 싶다 찾아왔다. 왠 팬이람, 어색한 상황 가운데 만나보니 최근 출간된 내 책을 교과서 보듯이 줄 치고 온 것 아닌가.
'선생님 강의를 듣고 가슴이 후련해지고 카타르시스가 생겼어요, 독자들에게 같은 경험을 주고 싶습니다.' 무엇에 후련해졌나 물으니 '날라리로 살라는 말에요'라 답한다. 황당해하며 인터뷰를 마치고 다른 사람들의 강의 반응이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어라', 내가 강조한 이론과 사례보다는 '날라리'에 '힐링'을 느끼고 있는 것 아닌가. 잡지가 도착해 열어보니 나를 날라리행복론 전도사라 칭하며 '이성보다 감성, 의무보다 욕망, 내일보다 오늘, 마음대로 사는 게 행복의 비밀'이란 타이틀이 잡혀 있었다. 말이 멋있지 막 살란 이야기 아닌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 지인들에게 인터뷰 기사를 숨기는 내 모습을 보면서 진짜 날라리로 살기엔 멀었단 생각이 들었다.
마케팅, 품질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라 한다. 사실적 묘사보다는 은유적 암시가 인식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장황한 설명보단 농축된 은유적 메시지가 강한 인식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다. 심리 상담에서도 은유적 해석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날라리'란 계획에 없던 은유적 메시지가, 다른 이성적 설명보다 감성 시스템을 터치하며 위로를 주었던 것이다. 우리 내부의 감성이란 세계는 외부의 문명 세상을 만든 '변화 전략', 즉 분석하고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이성적인 통제 기술만으로는 통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넌 이제 다 컸어, 다 큰 애는 울지 않아요'란 말,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부모님한테 듣게 된다. 이성적 사고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삶의 가치 창출을 위한 효율적 도구로서 엄청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언어 체계의 지나친 확장이 거꾸로 우리의 삶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수많은 통제의 언어 틀, 나이가 들면 슬프지 않단 말인가. 오히려 반대다. 나이가 들수록 감성 시스템은 섬세해지고 삶의 철학적 우수에 젖게 되는 것이 정상적 심리 발달 과정이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으면 울화병이 생긴다. 자연스러운 감정에 따른 사고를 억압하고 회피하는 언어적 통제 전략은 모범생의 필수 조건일 순 있으나 마음은 병들게 한다. 언어는 우리의 수단일 뿐이고 우리 내부에서 만들어진 언어적 사고는 우리의 삶을 걱정해주는 하나의 불안 신호일 뿐이다. 날라리를 업그레이드하면 '한량'일까. 삶을 관조하며 멋진 은유의 시를 세상에 던지는, 그 불안 신호에 대한 여유 있는 수용이 통제보단 우월한 삶의 감성 위로 전략이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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