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경기 성남의 구(舊)시가지에서 월세로 사는 A씨. 몇 년째 건설현장 일용직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마련하는 월 수입은 150만원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도심 재개발 이후 월세 수요가 늘면서 5년 전 30만원 안팎이던 월세 값이 최근 40만원을 넘어섰다.
B씨는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인데도 세입자다. 서울 목동에 본인 소유 40평대 아파트가 있지만, 자녀 교육 때문에 서울 강남에 비슷한 규모 아파트를 전세로 살고 있다. 1억원 가량 차이 나는 전셋값은 여윳돈과 5%대 금리로 은행에서 대출 받아 큰 부담은 없다.
2005년 이후 전ㆍ월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저소득 계층 세입자의 주거 관련지출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됐다. 저소득층은 연간 소득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위(中位) 소득'의 50%에 미만인 경우를 말하는데 2010년 기준으로 국내 1,730만 가구 가운데 15%가 해당된다.
25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주택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 주거복지 현황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2005년 총 소득(785만원)의 2.9배 가량이던 저소득 계층 세입자의 전세보증금(2,285만원) 부담이 2010년(총 소득 793만원ㆍ보증금 4,507만원)에는 5.7배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전세를 월세로 환산한 임대료(환산율 8%)에 전기ㆍ수도료를 합친 주거 관련비용이 총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29%에서 50.8%로 두 배나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에서는 이 비율이 50%를 넘으면 '주거비 부담이 심각하게 과다한 가구'로 지정돼 임대료 우선 지원 등 정부의 특별지원 대상으로 분류된다.
정부의 임대 지원이 '중산층ㆍ전세 계층'에 집중되면서 전세에 살던 저소득 계층 가운데 25%가 보증부 월세로 밀려난 반면, 고가 주택에 대한 전세 수요가 늘면서 고소득 계층의 전세 비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2005년에는 저소득층의 20%는 월세보다는 사정이 나은 전세에 거주했으나, 2010년에는 그 비율이 15%로 하락했다. 저소득층의 약 86만가구가 월세나 '반(半)전세' 상태로 추락한 셈이다.
고소득층에서는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2005년 17%이던 전세 비율이 2010년에는 21%로 상승했는데, 월세 비율은 1%에서 0%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는 중산층 이하에서는 전세 비중이 모두 감소한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배율도 저소득과 중산층에서는 상승했으나, 고소득층만은 3.86배에서 3.49배로 하락해 주택 구입능력이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집필한 정의철 건국대 교수는 "주거 여건의 전반적 개선에도 불구, 저소득층의 주거부담은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며 "시대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주거 양극화 해소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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