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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명 일자리 '대박' 유혹… 도박 중독 사회 '쪽박'찰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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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명 일자리 '대박' 유혹… 도박 중독 사회 '쪽박'찰 수도

입력
2012.10.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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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싱가포르 중심가의 마리나베이샌즈 리조트 지하1층 카지노. 평상복 차림의 싱가포르 시민들과 말레이시아 출신 건설 노동자들이 구깃한 지폐를 손에 쥐고 베팅할 때마다 화면에서 줄어드는 돈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카지노를 자주 찾는 편"이라고 했다.

#. 1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중심가의 윈 리조트 1층 카지노. 바카라 테이블에 딜러와 마주 앉은 한 중국인 관광객이 한 번에 2만5,000달러짜리 칩 10개(한화 약 2억7,500만원)씩을 걸고 있었고, 돈을 잃을 때마다 몰려든 구경꾼들의 안타까운 탄성이 쏟아졌다.

#. 19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호텔 1층 태양의 서커스 'KA' 공연장은 전 세계에서 온 관람객들로 가득 들어찼다. 무대장치에만 100억원 넘게 투자한 이 공연은 150달러가 넘는 입장료에도 불구, 매일 2회 공연이 매진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리조트 수입의 절반 이상은 이런 공연과 전시 등 '비(非)카지노' 분야에서 나온다.

지난주 둘러본 싱가포르와 라스베이거스의 복합리조트(Integrated ResortㆍIR)에서는 단란하게 유흥을 즐기는 가족 단위 관광객과 도박에 빠진 근로자 등 다양한 명암이 교차했다. 수준 높은 공연ㆍ전시 문화 이면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도 있었다.

카지노 메이저들에게 IR의 핵심동력은 여전히 카지노다. 라스베이거스처럼 IR 단지가 성숙단계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카지노가 다른 시설의 투자손실을 만회하고 최소한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3대 메이저 카지노사가 한국에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요구하는 것도 최소 30% 이상으로 예상되는 카지노의 내국인 비중을 투자의 안전판으로 삼겠다는 의도에서다. 우리로선 IR 유치의 이익과 비용을 냉철히 짚어봐야 한다.

카지노 메이저들에게 싱가포르의 성공은 훌륭한 홍보 사례다. 싱가포르 정부는 2000년대 중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IR을 선택했다. '도덕국가'의 이미지를 거스르는 결단에 반발여론도 거셌지만, 2005년 리센룽 총리는 "핵심은 카지노 허용이 아니라 카지노 때문에 수십억달러 수익을 포기해도 되느냐다"라며 국민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샌즈그룹이 56억달러를 투자해 간척지 위에 세운 마리나베이샌즈 IR 단지가 2010년 4월 문을 열었다. 이후 2년 동안 싱가포르 관광객은 36%, 관광수입은 73% 급증했다. IR가 끌어들인 가족 단위와 비즈니스 관광객 덕택이라는 설명이다. 조지 터네서비치 마리나베이샌즈 회장은 "지난해 싱가포르에 낸 세금만 5억9,000만달러이며 2015년에는 싱가포르 국내총생산(GDP)의 1.26%를 마리나베이샌즈 IR가 점하게 될 것"이라며 "당초 5~7년 정도로 봤던 샌즈그룹의 투자금 회수기간도 예상보다 단축되는 추세"라고 자랑했다. 다만 IR 초기 단계인 싱가포르는 카지노 수입이 전체 IR 수입의 75~80%나 된다.

문제는 경제적 이익의 대가로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현지에서도 이미 도박 중독의 폐해에 대한 경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한 교민은 "1인당 소득 4만달러가 넘는 싱가포르인에게 부작용 방지 차원에서 만들어 놓은 카지노 입장료(1회 100싱가포르달러, 연간은 2,000달러)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카지노에서 가산을 탕진한 한국 교민들도 여럿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선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다. 이헌욱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은 "관광ㆍ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한국은 비교 대상이 안 된다"며 "카지노 허용에 따른 부작용까지 감안하면 연간 손실이 72조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에서 보듯, 카지노 유치로 돈을 벌 생각보다는 최소한으로 제한해 사회적 폐해를 줄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제조업의 고용 창출능력이 한계에 달한 만큼, 서비스업을 과감히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내회 숙명여대 호스피탈리티 경영전문대학원장은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내국인 허용 카지노라도 철저한 안전장치를 전제로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3억 인구가 사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 글로벌 관광허브로 자리잡는다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정권을 쥔 정부 내부에서도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카지노 인허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김진곤 관광산업팀장은 "내국인 출입 허용은 어떤 논의나 검토도 해 본 적이 없지만 현재 국민 정서로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범정부 차원의 서비스산업 발전계획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대규모 투자의 매력에 미련을 두는 눈치다. 한 고위 관계자는 "송도 녹색기후기금(GCF) 유치를 계기로 경제자유구역 내 서비스업 활성화를 재검토하고 있다"며 "여론이 부담스럽지만 공식 제안이 들어오면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겠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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